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을 지적하는 누가 노무현을 무릎 꿇리려 하는가  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 후, 이런저런 일로 신문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보니 지난 현충일에 노 대통령이 '독선과 아집은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취지의 연설을 한 모양이다.

참 얼척이 없다.  

사실 대통령이 하고 있는 말은 어느 한 곳 틀린 데가 없다. 모두 다 맞는 얘기다. 그런데 왜 대통령의 연설을 보면서 이렇게 얼척없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자국의 역사를 부끄러워하고 있기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은 "지난날의 잘못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자"고 이야기한다. "용서하고 화해하자"고도 말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같은 주장에 흔쾌히 동의하고 나설 사람은, 노무현이 '바담풍'이라고 한대도 바른 소리라며 우기려드는 이른바 '노빠' 말고는 아무도 없지싶다.  

반성과 사과라는 말은 그것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말이다. 자신은 쏙~ 빼놓은 채 의견을 달리 하는 타인에게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는 것만큼 독한 자기 아집과 견고한 독선도 찾기 힘들다.

다시 말하지만, 국민 다수가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요체는 반성적 사고의 부재와 거기서 비롯되는 단단한 옹고집에 있다. 반성의 주체는 다른 누구보다도 노 대통령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어떤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반성의 기미가 없을 뿐더러, 반성과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식이다. 얼척없다고밖에는 달리 할말이 없는 이유다.


독선과 아집, 배제와 타도는 민주주의 적!!!
- 제51회 현충일 추념사 / 대통령 노무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오늘은 쉰 한 번째 현충일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독립된 나라에서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을 누리면서 저마다의 소중한 미래를 가꾸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애국선열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릴 것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선열들의 애국과 희생정신을 본받아 실천하고, 이를 자손만대에 가르칠 것입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을 예우하는 데도 최선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서 방금 말씀드린 다짐에 보태서, 다짐 하나를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불행 되풀이 않으려면 희생의 역사로부터 배워야

다시는 우리 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애국선열들이 안타까운 희생을 바쳤던 그 역사로부터 배우기를 소홀히 했거나, 또는 배웠더라도 실천하기를 외면해서, 같은 불행을 반복해 온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100년 전, 우리는 망국의 치욕을 겪어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굶주리고 짓밟히는 고난의 세월을 겪어야 했고,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가족을 버리고, 고향도 버리고 이역만리에서 싸우다가 목숨을 바쳐야 했습니다.

이 땅의 위정자들이 나라의 힘을 키우지 않고 서로 편을 갈라 끊임없이 싸우다가 초래한 일입니다.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 나라를 일으켜야 할 때, 오히려 백성들을 억압하여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게 한 결과입니다.

사리사욕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또한 다름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독단적인 사상체계 때문이었다고도 합니다. 저는 두 가지 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이 되었으나 동서 대립의 국제질서가 주된 원인이 되어 나라가 갈라졌고, 마침내 동족간의 전쟁이라는 엄청난 불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하나로 단결해서 대처했더라면 그 엄청난 불행은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단지 저만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민족정기와 자주독립, 통일을 외쳤지만 서로를 배제하고 용납하지 못한 채 목숨까지 걸고 싸웠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까지 권력에 이용한 장기독재는 결국 4·19 희생을 가져 왔습니다.

5·16과 10월유신, 군사독재로 이어진 불행한 역사는 끝내 5·18의 비극을 낳았습니다.

분열과 배반의 역사가 동족간 전쟁, 4·19, 5·18의 비극 만들어

해마다 3·1절, 광복절, 제헌절을 기념하면서도 우리가 역사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 역사의 교훈을 실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이 같은 불행한 역사는 마감해야 합니다. 분열을 끝내고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상대와 상대의 권리를 존중하고 의견과 이해관계의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대화로 설득하고 양보로 타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끝내 합의를 이룰 수 없는 경우라도 상대를 배제하거나 타도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절대반대, 결사반대도 다시 생각합시다. 규칙에 따라 결론을 내고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독선과 아집, 그리고 배제와 타도는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역사발전의 장애물입니다.

우리 정치도 적과 동지의 문화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 경쟁의 문화로 바꾸어 나갑시다. 기업들이 시장에서 상품의 질과 서비스로 경쟁하듯이 정치도 정책과 서비스로 경쟁하는 시대로 가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과거 대결의 역사로부터 비롯된 감정의 응어리도 이제 다 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날 애국하는 방법을 놓고 적대했던 분들을 이곳 현충원, 그리고 4·19, 5·18 민주묘지 등 전국의 국립묘지에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분들의 공적을 다 같이 추앙하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제도적인 화해는 이루었다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의 진정한 화해와 통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같습니다. 아직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이념적 색채를 씌우려는 풍토가 남아있고, 또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의 분노와 원한이 다 풀리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부끄러운 역사 막으려면 진정한 화해와 통합 이뤄내야

이제 이것마저도 극복해 나갑시다. 지난날의 잘못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합시다. 용서하고 화해합시다. 그래서 하나가 되고 힘을 모아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나갑시다.

그리하여 다시는 불행한 역사,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 나갑시다.

다시 한 번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며,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6월 6일>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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