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진중권 (2003-12-05 02:07:13, Hit : 985, Vote : 31)
Subject  
  우리당, 민주당, 개혁당

결국 하나가 될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하나가 될 수 밖에 없어요. 이 과정에서 최소한 제 살을 깎는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지역감정에 입각한 정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모범을 보인다면, 영남의 지역주의도, 비록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 약화될 것입니다. 이때 호남은 다시 한번 윤리적으로, 정치적으로 승리하게 되는 겁니다.

호남인의 이익과 호남 토호 및 호남출신 중앙 엘리트들의 이익은 분명히 구별되어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여기 들어와 자기가 마치 호남 사람들 전체를 대변하는 양 거들먹거리는 애들은 실은 호남의 서민이 아니라, 호남 엘리트들의 수구성과 기득권을 옹호하고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 호남지역의 지구당에서 떡고물 먹으며 사는 애들이 인터넷에 들어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장난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겁니다.

사실 한나라당을 상대하나, 민주당을 상대하나, 늘 이성적인 논의를 막는 문제가 그 원초적인 집단감정입니다. 게다가 이 감정은 마치 군비확대경쟁처럼 상대의 집단화를 보면서 더욱 더 반사적으로 강화되는 악순환을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어느 조사결과를 보니, 지역감정이 오늘날처럼 악화된 것은 정작 박정희, 전두환 때가 아니라 87년 이후라고 하더군요.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적어도 이 문제만은 이제 좀 정리를 하고 넘어갈 때도 됐습니다.

민주당과 우리당은 장기적으로는 하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념이 다른 것도 아니고, 노선이 다른 것도 아니고, 지지기반이 그렇게 크게 다른 것도 아니고, 또 나뉘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어차피 피차 생존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그 재통합의 가능성까지 보고, 지금 이 갈등이 그저 몹쓸 싸움이 되지 않고 눈꼽만큼이라도 정당의 체질에 개선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일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감정에 입각한 동원정치, 그거 하나만 약화시켜도 꽤 괜찮은 겁니다.

아울러서 이제 민주당을 '진보'로 착각하는 일도 없어져야 합니다. 민주당은 보수정당입니다.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파병, 네이스, 새만금, 그 밖의 여러 문제에서 민주당/열린당이 보여준 태도는 분명히 보수적인 것입니다. 가끔 그 지지자들이 여기에 실망하거나, 당혹해 하거나, 어리둥절해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들이 민주당/열린당을 모종의(소극적?) '진보'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민주당이 그 동안 진보의 레토릭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서는 안 되는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의 표를 거저 먹어 온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앞으로 '소극적 진보'니, '비판적 지지'니 어쩌구 하는 유치한 동원 이데올로기에 속지 말고, 자기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직한 투표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투표부터 똑바로 하는 거,  그게 진보의 첫걸음입니다.

개혁당이 해체하고 우리당으로 가버렸지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어쨌든 유시민씨가 몹쓸 짓을 한 겁니다. 상당 수의 당원이 남아서 개혁당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개혁당원의 일부는 속아서 그 당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어떻게 자기 정체성을 제 당원에게까지 감추는 정당이 어디 있습니까?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어쨌든 저야 개혁당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거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지금 개혁당에 남아 있는 분들은 그걸 몰랐던 모양입니다. 좋게 말하면 순진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석은 거죠. 어떻게 이렇게 물정을 모를 수가 있을까요? 하지만 나는 이 분들의 그 어리석음을 사랑합니다. 워낙 약아빠진 사람들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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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aciles 2006/10/25 22:51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87년 이후에 지역감정이 악화되었다는 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때까지는 드러내지 못했던 것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드러낸 것일 뿐입니다.

    • 하민혁 2006/10/26 10:55  편집/삭제  댓글 주소

      그렇군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어요. 비슷한 논리로 지금 열린당 애들이 '민주화세력' 어쩌고 하면서 '과거로 돌아가자는 거냐' 어쩌고 하는 얘기들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지요. 한마디로 국민은 21세기에 와 있는데, 걔들만은 아직도 여전히 20세기의 칙칙한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다고나 할까요?
      물론 걔들이 그런 착각에 빠져 산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겠지요. 그러나 얘들이 그 착각에 근거하여 뭔가 보상을 받아내려 한다면 문제가 달라지는데 얘들 하는 꼬라지를 보면 딱 그런 짝이에요. 아동틱한.

  4. 미디어몹 2006/10/26 10:13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하민혁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5. maha 2006/10/26 13:51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장난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겁니다." "악화된 것은 정작 박정희, 전두환 때가 아니라 87년 이후라고 하더군요." <-- 겨우 이렇게, 별 근거자료도 없는 추측성 발언과, 누가 연구했는지도 모르는 어디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논리의 근거를 삼는다는 건 진중권이 조선일보한테 맨날 비아냥거렸던 방식 아닌가요? 쯧쯧.

  6. 건전한사이코 2006/10/26 16:55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maha/ 87년 이후에 지역감정이 악화되었다는 근거는 지역주의를 연구한 정치학 자료들을 차근히 살펴보시면 쉽게 그리고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지역주의나 감정을 연구한 정치학자들의 정설이기도 하지요. 어차피 저 글은 일반적인 네티즌들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중권이 '시사평론가'나 '문화평론가'로서가 민노당 지지자 '네티즌'으로 쓴 글이니, 그런 지적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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