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당 살리기 60일의 뒷이야기 / 오정례 집행위원

오늘 모든 이야기를 쓴다.그간 일부 위원들의 무차별 폭로에도 불구하고 개혁당 살리기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어 언급을 자제해 왔다. 당이 살아난 이후 후일담으로 이야기하면 이 억울한 감정도 다소 풀어지겠거니 하며 참아왔으나 끊임없이 제기되는 음해성 글, 직민님의 간접적 카더라식 글을 보면서 그간 쟁점에 대해서 요약한다.

지난 11월 1일 개혁당 해산투표가 불법적으로 강행된 뒤 깊은 좌절감을 맛보았다. 정치인으로서는 유시민과 다른 노선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선택이었고 김원웅과 함께 모험을 걸었지만 결국 쓴 잔을 마셔야 했다. 다음날 혼자 입당해버린 김원웅에게 더 큰 배신감을 느껴야 했고, 그날 이후 전주에 내려와서 많은 고민을 했다. 나는 그 뒤 전주대에서 평생대학원 과정으로 지방의원 육성을 위한 정치학교를 개설, 운영하기로 하고 박사과정 공부를 하기로 진로를 정했다.그러다 11월 초 부천소사 사무국장인 davenger를 우연히 만났고, 그곳에 작으나마 개혁당 살리기 방안이 있다는 제의를 받았다. 11월 1일 결의는 해산 후 입당인데 이들이 탈당 후 입당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지만 희망적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선관위로부터 해산흠결통지를 받았다. 드디어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당게판에서 비대위 활동을 접하게 되었다. 드디어 11월 10일 전당원 간담회를 집행위원의 자격으로 소집하였다. 당일 20여명 이상 참석해 주었고 그날 참석자들의 요구에 따라 해산절차유보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날 회의를 마치고 개혁당 살리기가 순탄치만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비대위위원간에 임원을 인선하면서 화합과 추대의 분위기기보다는 주도권 다툼의 느낌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비대위원들은 상대방에 대한 음해를 하기 시작했고, 그날 이후 실망해서 나는 다시 전주에 내려왔다. 며칠 후 쪽지로 조로맨은 ‘전주에 계실 때가 아닙니다. 서울로 올라오십시오’ 라는 내용을 보내왔고, 11월 14일 고도환, 암행어사, 송재신님이 전주를 방문했다. 당시에 4인의 지명직 집행위원 선임과 창구를 단일화 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혼자 남은 집행위원이 4명을 지명한다는 것은 월권으로 본다는 게 내 답이었고, 창구 단일화에 대해서는 정리해 준대로 따르겠으나 지난 11월 10일 회의 결과를 존중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11월 15일 내 임기가 끝났지만 차기 집행부가 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임기는 자동 연장된다는 법률적 자문도 받았다.11월 17일 서울로 향했고 조로맨님이 작성해 준 대표자 변경신청 당인변경 서류를 들고 이용휘님과 선관위를 찾아갔다. 집행위원 1인이 회의를 해서 1인을 대표로 지명한다는 것과 당인변경서류였다. 이날 선관위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선관위에 등록된 당헌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당헌과 다르다는 사실이었고 선관위가 수차례 보정요구를 한 공문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날 선관위는 1인 회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접수를 반려했다. 송재신 주장처럼 임기가 끝나서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다만 선관위는 임기가 끝났는데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는 언급을 했고 이에 대해 조로맨과 전화로 협의해서 관련서류를 팩스로 송부해왔고 결론은 1인회의가 가능한지에 대해 직원은 확신을 갖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날이후 12월초 사무실을 얻기까지 서초동의 버지니아커피숍은 사무실 역할을 했다. 주로 조로맨,고도환,암행어사 ,송재신,이용휘,곽일훈,양희용, azoro 등이 회의 참여 멤버였고. 당시에 했던 두 가지 일은 인터넷을 접수하는 일과 선관위에 서류를 다시 접수하는 일, 법원의 가처분신청을 뒷받침해 주는 일 이었다.

1. 개혁당을 떠나려는 이유

물론 1월 9일자 글에서처럼 ‘한계를 느껴서’라는 표현으로 모든 것을 덮어 두고자 했다. 평당원으로 남겠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은 것은 인간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 12월 송년회 날 나의 탄핵안이 제출될 것이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용휘씨가 주장했던 비송사건 안을 몇몇이서 추진하려 하는데 그 대표를 최고 연장자인 고도환으로 하고, 지역대표들을 임시이사로 하려는데 동의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안을 통과시켜주면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한다. 이에 대해 지역 대표들로부터 그런 전화를 받았다는 고백을 직접 들었고, 이는 직접민주주의를 포함한 임시지역대표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통화를 한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 그날 이용휘씨는 비송사건을 안건으로 제출했고, 송재신씨는 사전에 없던 나에 대한 탄핵안을 긴급안건으로 제출했다. 대한아줌마와 이용휘씨가 지지의사를 표했고 다른 대표들은 문제가 있으면 윤리위원회에서 책임을 물으면 된다는 주장을 했다. 논란 중에 송년회 시간이 가까워지고 전국에서 개혁당을 살리자고 애쓰는 동지들 앞에서 서로 위로하고 단합하는 모습이 필요했고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다음회의에서 해명하기로 하고 12월 27일 6차 회의에서 대부분 해명을 했다. 분명 그 자리에 직접민주주의도 참가를 했고 문제없이 끝났다. 송년회 사건이후 타이거의 주선으로 이용휘,송재신,암행어사, 고도환과 개별적으로 만나 무엇이 문제인지 협의를 했고, 서로 화합해서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다. 1월 3일 임시집행기구 회의가 여의도 당사에서 메버릭과 직민의 제안으로 소집되었다. 당일 회의 소집에 대해 이견이 분분한 상태여서 판단을 내리지 못했으나 메버릭의 강력한 주장으로 이를 받아 들였고 후에 안풍님에게는 양해를 구했다. 물론 탄핵안이 또 제출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직민과 메버릭이 주도하고 있고 타이거는 결과를 따르겠다는 합의가 된 상태라는 보고를 받았다. 그래도 회의 소집에 동의를 했다. 그러나 내가 참석한 상황에서 비번공동접근 권한자변경에 대한 건만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고 나머지는 해명의 건으로 상정되었다. 잠시 실신해서 병원으로 실려 간 사이에 탄핵안을 제출 부결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탄핵 그자체가 아니다. 당과 개인의 신상에 중요한 안건을 정확한 조사 없이, 준비 된 안건상정 없이 계속 음모적으로 추진함으로서 당무를 방해함은 물론 당원들의 판단을 흐리고 심지어 직민은 글에서 쇼라고 나를 매도했다. 당일 당사에서 심신의 피로와 빈혈로 누워있는 상태에서 사퇴하라고 권하는가하면 병원으로 실려 간 뒤에 긴급안건으로 탄핵안을 제출 처리하고 자 한 행위를 도저히 용인할 수가 없으며 인간적으로 환멸을 느꼈다.이날 당을 떠나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내가 사퇴를 미룬 것은 몇몇의 부당한 주장에 사사로이 흔들린다면 개혁당 살리기가 매우 힘들어질 거라는 판단과 당 살리기에 있어 대외적 관계를 풀어가는 데 김이준태님의 지적대로 아직은 효용가치가 남아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날 이후 내가 사퇴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오자 몇몇 분들이 또 다시 곽일훈 고문을 앞세워 당직을 맡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전해오고 있다 .나는 곽일훈 고문과 함께 지금까지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분에게 ‘전당대회의장’ ‘비젼2004팀장직’을 수행하게 함으로서 실질적인 당무의 중심에 세우고자 했다. 물론 현재도 그분이 당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일부 몇몇의 사람들의 언변에 현혹되시지 않길 진심으로 조언 드리고자 한다. 진심으로 조언하건대 본인이 개혁당 살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스스로 퇴장하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2. 사무총장을 비롯한 당직인선의 경위에 대해

나의 당직 인선 안에 대한 추천은 3번에 걸쳐 있었고, 모두 임시집행기구의 승인을 받아서 시행해 왔다. 첫번째는 홍성렬 사무처장, 정종국 조직강화위원장, 송재신 윤리위원장, 김표무 기획위원장 인선안이다. 인선 기준은 업무능력과 조직화합의 차원이었다. 사무처장과 기획위원장은 내 생각이었고, 조직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은 비대위 안배 차원이었다. 당시에 송재신씨는 부결되었고, 후에 암행어사는 당원이 아닌 사람을 추천했다는 지적을 받은 것 외에는 성공적이었다. 두번째 인사는 공개모집을 통한 인사였다. 자천, 타천, 추천의 형식으로 인선 안을 작성하여 제출했다. 그날 겸직불가로 인한 결정으로 세분을 부결되었고, 온라인 위원장으로 추천된 타이거에 대해서는 온라인 위원으로 승인하였다. 이에 대해 타이거는 수락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타이거가 온라인 담당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도와주는 차원으로 일을 해서는 안 되며 당직을 맡아서 책임 있게 일해야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세 번째 인선 안은 사무총장, 홍보위원장, 기획위원장, 전당대회 준비위원장등의 인선 안 이었다. 사무총장으로 추천한 고도환님, 홍보위원장 이용휘님은 부결되었고, 나머지는 원안대로 승인되었다. 온라인 위원장은 재차 선임하고자 했으나 인선 안을 올리기 전 암행어사를 통해 타이거의 의견을 물었었고, 저녁 회의에서 암행어사는 타이거가 수락하지 않았다고 전해왔다. 이것이 인선의 주 내용이다

3. 다음은 인선과 관련된 고도환씨와 2,000만원 문제의 전말이다.

초창기에 비대위가 사무총국의 기능을 하기로 대전에서 결정된 뒤, 당시 비대위 공동대표인 고도환씨에게 사무총장을 맡아 달라는 주문을 한 바 있다. 이에 본인도 수락의사를 밝혔다. 첫 번째 인선 안을 제출할 때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인천지역 방문차 동승했던 암행어사와 송재신씨와 함께 인선 문제를 논의하면서 사무총장안 제출은 좀더 신중하자는 의견으로 접근을 보았고 사무총장이라는 중책을 공론화 과정 없이 첫 번째 회의에서 제출하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당사를 오픈한 후 당 재정 상황이 무척 어려웠다. 당시에 고도환씨와 곽일훈 고문의 도움으로 근근이 당사를 운영해 오던 터라 선임 될 사무총장과 대표권한대행이 공동으로 재정문제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조로맨 사무실에서 이에 대한 대략적인 합의를 보았다. 2000만원 이야기는 당시에 한달 운영비가 2000만원정도 소요되는데 법적 소송이 완료될 시점을 두 달 정도로 잡고 일부는 신임 사무총장이 일부는 대표권한대행이 책임지기로 생각한 것이다. 나 또한 남편에게 대출 좀 할 수 없느냐고 당이 정상화되면 갚겠다고 해 논 상태였고, 남편은 한번 들어가면 후원금 되지 받을 수 있겠냐고도 했다. 직접 사무총장후보에게 이를 전하지는 못했으며 암행어사를 통해서 의사를 타진했고, 본인도 수락의 의사를 전해 왔다. 그래서 두 번째 인선 안에 포함하려고 했을 때 고도환씨를 사무총장으로 추천하려 한다는 소문이 누출이 되어 그 분의 인선을 적극 반대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었고 이후 고도환씨를 만나 주변 사람들과 집행기구위원들과의 관계를 잘 풀어달라는 요청했으며, 고도환씨도 몇 사람을 만나 잘 화해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최종적으로 곽일훈 고문에 자문을 구했으며 곽고문은 고도환씨를 잘 모르지만 사무총장 인선은 신중해야 한다고 자문했다. 그래서 두 번째 인선 안에서도 사무총장 인선 안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후 고도환씨는 인선 안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 강력한 불쾌감을 간접적으로 전달해 왔고, 이후 타이거의 주선으로 화해를 했으며, 세 번째 인선 시 추천하겠다고 약속 했다. 물론 세 번째 인선에서 추천하였으나 부결 되었다. 이유는 무산된 5차 회의 전에 이용휘씨가 주도해서 진행하려 했던 비송사건 과정에서 그분의 제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고도환씨를 대표로 하는 내용으로 소송을 바꾸어 소송하려했고 그 과정에서 지역대표들에게 전화를 걸어 동참의사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5차 회의 안건이 비송사건제안과 나에 대한 해임 안이라는 사실이 그 증거다. 이에 대해 몇 명의 지역대표에게 대가를 지불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직민도 비송사건 진행에 동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대한아줌마는 고도환씨를 대표로 하는 소송에는 반대하며 본인이 유일한 경남도 집행위원임을 언급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송년회가 있는 날 이들은 그래서 비송사건을 제기하고 나에 대한 해임 안을 안건으로 제출했다. 12월 27일 회의에서 고도환씨는 만장일치로 부결되었고, 서울지역대표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으면서도 나는 조직의 화합을 위해 전당대회 부위원장으로 선임을 요구했으며 통과되었다. 그 이후 사무처장을 통해 부위원장직 수락을 요구했으나 유보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부에서 2000만원을 안주어서 인선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확히 잘못된 내용이다. 그것은 나와 사무총장이 당 운영을 위해 책임을 지자는 의미였고 이런 결정은 집행기구 회의에서 계속 당내 재정문제 안건을 제출하면 어떤 답변도 결론도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대표권한대행으로서는 당직자를 채용해야하고 당사 임대료, 인터넷 운영료를 지불해야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했다. 결국 곽일훈 고문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4. 이용휘씨,송재신씨 인선과 관련된 내용은 이러하다.

이용휘씨는 홍보위원장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고, 나는 대변인 기능의 홍보위원장은 둘 수 없으니 일반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홍보위원장은 가능하다고 제의를 했다. 송재신이 말하는 이용휘씨 관련된 이야기는 완전히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암행어사와 고도환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이용휘씨 행동에 대해 비판을 해왔고 타이거의 주선으로 화해하면서 홍보위원장이 아니면 어디든 인선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으며 마지막 암행어사를 이용휘에게 보내 들은 의견은 홍보위원장직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전화로 이용휘씨와 합의 한 것은 대변인 기능이 없는 홍보위원장직을 수락하거나 비송사건을 전담하는 법률지원팀장을 맡아 달라고 했으나 본인은 전자를 선택해서 제출했으나 부결되었다. 송재신씨는 처음에 윤리위원장으로 추천했으나 부결되었고 당직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제안을 나에게 해 왔고, 그 사람의 경력을 확인한 결과 국제협력이나 대외협력 파트에서 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제안했으나 며칠 후 모든 직을 고사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하여 추천하지 않았다.

5. 법률 소송문제에 관해서

법률소송에 대해 그동안 모든 법률문제, 선관위 등록문제는 사무처장과 조로맨에게 맡겨 왔다. 문제의 시작은 이용휘씨가 비송사건을 제안하고 지금의 방식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주장해 온 뒤부터였고, 사실상 조로맨이 진행했던 소송들은 기각되거나 기일이 연기됨으로서 불안감을 주었고, 한 지구당의 자문변호사로부터 지금까지 소송과 비송사건에 대한 자문을 구한 결과 비송사건밖에 해결책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조로맨과 협의했고 별도로 비송사건을 추진해 보라는 의견을 듣고 이용휘씨에게 비송사건의 추진을 담당해 주었으면 한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12월 27일 회의에서 비송사건 추진을 의결했다. 김이준태님의 지적처럼 비송사건의 추진은 당인을 찾아오는데 거의 유일한 방안으로 보여 진다. 지명직 집행위원을 선임한 것은 일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비밀리 처리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선관위와의 서류의 흠결을 보정하기 위한 단순한 서류상의 행위로 판단하고 사무처장에게 일임하고 법률고문 조로맨과 상의해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애초에 선관위 등록 건을 제안한 것은 조로맨으로 당헌과 당규, 선거법을 검토하여 제안하였고 나도 동의한 부분이다. 다만 일부 당원 들 중에서 선관위에서 대표변경등록을 하여 주면 그 사람은 합법적인 대표가 되는데 그러면 전권을 휘두르지 않겠느냐 등의 오해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위 건이 제안된 배경을 모르는 전적인 오해에 기인한 것이다. 본인이 법률대리인으로 포함 받은 권한범위 내에 당연히 포함될 뿐만 아니라 위 건은 순전히 개혁당 살리기의 법적 한 방법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집행기구 위원들은 이 또한 탄핵 사유로 내세웠고, 이 소송건을 처음부터 준비해왔던 조로맨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 텐데도 어느 누구도 나를 위해 정확한 변론을 해 주지 안았다.

6.인터넷 비밀번호 유출에 대한 고도환님의 지적에 대해

@허정운이에 알려주었나

인터넷을 접수하는 전말은 그렇다.  인터넷에 대해 지식이 없었던 나는 일단 하나로통신의 엔진닷컴에 전화해서 관리자 변경신청을 했다. 오정례를 제외한 구 관리자 전원을 삭제했다. 그리고 하나로의 도움을 받아 비밀번호 4대중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비대위 위원들의 의견을 들어 당시 12월 10일 온라인위원으로 선임된 탕아를 통해 나머지 비밀번호 접근 작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 그 이후 이용휘님의 제안으로 타이거를 소개받았고 익히 알고 있던 타이거도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문제도 많았던 강릉의 참정연 모임에 조로맨, 아조로,고도환,이용휘 와 함께 참석했다. 한 승용차 안에서 핸드폰 밧데리가 다 떨어진 상태에서 오후 2시정도 긴급 충전하여 개통이 되었고 그때 하나로로부터 중요한 전화를 받았다. 내 연락이 안 되어서 서버접근이 가능한 페이레터라는 회사의 실무자로부터 구 당직자였던 허정운이라는 친구를 통과시키라는 연락을 받아서 통과시켜주었다는 것 이었다. 나는 그때서야 서버접근권한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당장 다운시켜서 비밀번호를 변경시켜 달라고 했다. 아마도 그때 함께 동승했던 고도환님이 ojr1403을 듣게 된 모양이다. 2-30분이 지난 후 비번이 바뀐 것을 알게 된 허정운이 전화를 해왔고 심하게 다툰 것을 들었나 보다. -내가 고도환씨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것을 허정운이에 알려주었다고 당게에 글을 쓴 것이다. 고도환씨에게 묻고 싶다. 만일 내가 그런 행위를 했다면 왜 당시에는 지적을 하지 않고 지금에 와서야 그런 주장을 하는지 묻고 싶다. 물론 그분은 어설프게 변명을 했다. 당시에는 간과했다고. 그래서 1월3일 회의에서 핸드폰 통화내역을 뽑아서라도 개인의 인격을 모독한 것이기 때문에 사과를 받아 내겠다고 했고, 나에 대해서는 그렇게 철저한 집행기구 위원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방관자로 남았다. 나에게 들여댄 기준만큼이나 상대에게도 철저하게 기준을 들여댔다면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았으리라. 암행어사가 한 주장중에 ‘당게에 서버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글을 올려서 구지도부가 서버 인수 작업을 알게 되어 인수가 늦어졌다고 주장을 했다. 물론 그 글이 기재된 다음날 구 지도부측의 항의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글은 내 임으로 쓴 것은 아니며 타이거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도 그런 위험을 예측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타이거가 본인의 공개를 꺼린 상태에서 내 명의 글이 불가피했다.

@-온라인 서버 접근 과정에 대한 것이다.

나는 당시에 법률 소송은 조로맨과, 온라인은 타이거와 협의해서 하겠다는 말을 했다. 여러 차례 책임은 내가 지겠으니 기술적인 판단은 타이거가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책임이 뒤따를 수도 있는 첫 번째 서버에 접근하는 날도 내 이름으로만 서명을 했고 두 번째 전문회사를 동원하여 서버에 접근할 때도 하나로 통신 측에 그 회사의 서버접근을 승인했다. 타이거는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뒤에 하나로에 간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서명했을 거라는 판단은 못했다. 지금도 변함없는 것은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책임진다는 것이며 타이거에게 그 짐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타이거에게 고마운 것은 그 바쁜 일정에도 이모든 것을 헌신적으로 해 준 점이다. 온라인 서버접근권을 3인으로 결정한 찜질방 6차 회의 결과와 그 이후 번복하고 7차에서 재의결한 과정이다. -나는 그동안 온라인을 접수하고 몇 가지 보완요구를 타이거로부터 받고 승인한 바 있다. 전체 쪽지 보내기 기능과 핸드폰 문자 메시지보내기 기능 설치 등이다. 한 가지 결정을 못 내리고 타이거 판단에 맡겨버린 것은 카드이체계좌 신설에 관한 것이다. 내가 결정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라 대구모임에서도 상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 이후 타이거는 카드이체 계좌를 홈피에 설치했고, 사무처장에게 타이거한테 계약서 사본 등을 빨리 받아서 점검해보라고 지시한 바가 있다. 지금도 그것은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그 이후로 몇 가지 온라인과 관련하여 보고를 받았다. 일단은 사무처로부터 게시판 공지가 일일이 타이거를 통해야 하므로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대표 두 분으로부터 왜 권한을 집행기구나 사무처가 가지고 있지 않고 타이거 결정에 따라야 되는 것이냐는 항의를 받았다. 그리고 온라인 게시판에 타이거가 12월부터 그만둔다고 했다는 글이 올라갔다는 보고를 받았고, 두 어분에게 12월말부로 그만두어야겠다는 이야기와 이렇게 싸움만 하고 있으면 하나로에 반납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야기를 들었다. 물론 나는 농담으로 들었다. 잘하라는 경고성 메시지정도로 말이다. 12월 27일 당직자 회의에 참석해서 온라인 개편방향에 대해서 보고해 달라고 두 차례 타이거에게 전화를 했고 본인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당일 회의에서 이런 문제들의 진위를 들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참석하지 않았고 게시판에 질문을 했다는데 나는 보지 못한 채 회의에 참석했다. 그 이후 10시에 임시집행기구회의에서 당직 인선문제를 논의하던 중 온라인위원으로 하아즈님을 추천했고 , 그 와중에 서버접근권을 관례대로 몇 명을 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물론 회의록에서 밝혀진 대로 타이거가 없는 상태에서 정황만을 가지고 판단한 것은 오류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서버접근, 사이트접근도 여러 가지 기능에 따라 접근권을 나누어 주면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당일 임시집행기구는 서버의 공동접근은 원칙의 문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서 결정을 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타이거가 서운하게 생각할 수 도 있고 그 점은 우려스러웠다. 그러나 일 측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타이거에 대한 음모이거나 기존 한 약속의 파기이거나 그렇지는 않다. 1월 3일 회의에서 임시집행기구 위원들은 12월 27일의 결정이 나와 위원들의 잘못된 정보 제공으로 판단에 오류가 있었으므로 재의결을 해야 한다고 안건을 제출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번안 동의라는 제도가 있는 것 아닌가. 나나 집행기구 위원들이 얼마든지 오류와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날 회의는 그 문제를 이유로 탄핵안을 제출 해 온 것이다. 나의 음모가 있었다는 것이다. 타이거를 서버접근에서 제외시킨 것도 아니고 웹사이트 접근권 서버접근을 구분하지 못한 것과 타이거가 없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렸다는 그 자체가 탄핵감인가. 타이거와 전화 통화를 통해 당신이 없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린 것은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결정이 잘못되었다면 번안 동의를 해서 재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당일 임시집행기구 위원들은 상황을 확대시켜 나의 탄핵안으로 몰고 갔다. 울고 싶은 나한테 타이거가 뺨을 때려준 격이다. 타이거는 자신의 권한이 침범된 것에 대해 그렇게 분노할 만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물론 이것은 고도환의 비번유출 의혹제기가 의혹에 의혹을 낳아 사건을 엉뚱한 곳으로 몰고 간 것이다. 사실 개혁당 살리기 60여일은 나에게도 큰 교훈을 주었다. 사람을 너무 믿지 말 것이며, 남자들은 너무나 잘 삐진다는 것이다. 나는 일부 동지들의 음해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다 죽어가는 개혁당을 살려낸 나름대로의 공신이었기에 말이다. 그러나 상황을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침묵하거나 소송사건 등 자신들이 추진해온 추진 주체이면서 판단오류를 역으로 공격적으로 나왔을 때 너무 황당했다.

그런 점에서 이용휘씨의 비송사건 진의를 오해한 점을 사과한다.

당을 떠난다고 글을 썼을 때 몇몇의 일부 동지들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현재 당헌당규와 일반관례상 오정례씨 밖에 법통을 이어갈 수 없는데 지금에 와서 당을 떠난다는 것은 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며 당무를 하지 않더라도 당인 가져올 때까지 남아달라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탈당버튼을 못 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10일 새 임시대표를 선출한다는 보고를 받고 법률적 대표대행과 정치적 대표대행이 따로 있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 새 임시 대표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고 판단되어 새 대표로 당게판에서 거론 된 곽고문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사실상 법률 싸움은 포기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느냐고, 그리고 그렇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면 조로맨도 동의한것이냐고 물었고 함께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조로맨과 법적 싸움을 진행해온 나로서는 이제 나의 역할은 끝난 것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제 탈당버튼을 눌러도 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그 간의 사정을 적었다. 오늘 좋은 결론이 나서 개혁당 살리기가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

이제 글을 마무리한다.

개혁당으로 총선출마해서 어떤 이득이 있는지 모르지만 동지들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하였다. 내 고향 전주에서 개혁당으로 출마하면 택도 없을텐데 그래도 개혁당을 위해 장렬히 전사하더라도 출마도 고려했다. 하지만 이제 개혁당 후보 오정례는 없다. 지금 난 민주당도 선택할 수 있고 민주당 후보가 될 자신도 있지만 그런 선택은 아마 없을 것 같다.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

개혁당에서 못 다 이룬 꿈을 찾아 나의 길을 가고자 한다. 1월안으로 평소 꿈꾸어왔던 여성당의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동지들 함께 가자는 말은 않겠지만 잘 하고 있으면 박수라도 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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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박희섭 2006/12/11 02:57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당신은 영원한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개혁당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을 했던 오정례 당신은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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