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이 책을 하나 냈단다. 그리고는 청와대 블로그에 나름대로의 변 “한가하게 댓글이나 쓰고 있다”라니… 를 남겼다. 왈,

"댓글 논쟁이 한창일 때, 세종대왕과 한글을 떠올렸습니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쓰기 쉽고 알기 쉬운 한글을 만들어 반포했을 때 선비들이 얼마나 반대를 했습니까? 최만리는 상소문을 냈을 정도였습니다.

세종대왕과 한글을 만든 학자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선비들이 한글을 한문에 비교하여 언문(諺文)이라고 폄훼했습니다. 한글은 천한 백성들이나 사용하는 ‘개글’이라며 사용하지 말도록 줄기차게 주장한 것이지요. 그들에게 백성은 없었습니다.

한문은 양반과 서민을 가르는 기준이었고, 양반만의 특권이었습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유분수지..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싶은데, 이 친구의 이어지는 해석이 참으로 기가 막힌다.

"한글과 댓글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요. 온라인상에서 댓글로 자기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여 사회여론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500여 년 전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한글을 사용했던 수많은 백성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한글을 만들고 보급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세종대왕은 어떤 지도자인가요?"

이백만 수석은 지금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언론과 야당의 비판을 무릎쓰고 손수 댓글을 다심은 위대한 세종대왕께서 많은 기득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창제하신 것과 같은 이치다'는 걸 주장하고 싶은 모냥이다. 갑자기 속이 답!따~압!!해진다.

각설하고(기~일게 썰을 풀었다가 글을 썼다가 삭제했다), 이백만 수석의 비유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한글 창제'와 '댓글 쓰기' 사이에 최소한의 유비 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나로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둘이 어떤 방식으로 묶일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기득권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 세상을 친히 만드셨다면 이 수석의 비유는 유의미할 수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좋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도입하는데 결사 반대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하신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그 도입을 관철했다면, 이 또한 어느 정도의 유비 관계는 성립한다고 접어 생각해줄 수 있겠다.

그러나 뭔가? 대통령이 댓글을 다는 행위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좋다. 문제가 단지 여기까지라면, 아래 댓글에서 어느 네티즌이 말했듯이, '비유 자체는 억지스럽다고 해도 이백만이 하고자 하는 말이 기존의 특권의식과 소통부재를 지적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호불호를 떠나'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백만 수석의 주장에 담겨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이 수석의 아동티한 단순무쌍한 멘탈리티고, 본질을 호도하는 수사적 궤변의 위험성이다.

이백만 수석은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 노 대통령의 댓글 쓰기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들에게 먼저 '아날로그'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는 댓글이라고는 읽어본 적도 없는 무지몽매한으로 일반화해 버린다.

그런 논쟁이 있을 때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곤 했습니다. 대통령의 댓글을 신나게 비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댓글을 한 번도 써본 경험이 없고, 심지어는 남이 써놓은 댓글을 읽어본 적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선배님, 인터넷 댓글을 써본 적이 있습니까?”
“…”
“인터넷 댓글을 읽어본 적은 있습니까?”
“…”
“대통령이 쓴 댓글은 읽어 보셨습니까?”
“…”

무작정 비판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훗~ 한숨이 나오기는 이 수석의 글을 읽는 나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 수석은 지금 있지도 않는 거짓말을 만들고 있거나, 아니면 지나친 일반화를 범하고 있다. 우리 툭 까놓고, 솔직하게,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도대체 '대통령의 댓글을 신나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 댓글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백번 양보해서 이 수석이 만난 선배들이 언론에 나온 것만으로 '무작정' 비판하는 '단세포들'이라고 해도 그렇다. 대체 어떤 언론이 대통령의 댓글 하나 예시하지 않은 채 대통령의 댓글을 무조건 까대더라는 말인가? 상식적으로 도무지 요해되지 않는 황당한 이야기일 뿐이다.

게다가 이 수석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이 수석이 만나는 선배라는 이들은 왜 저렇듯 하나같이 한심한 사람들밖에 없는 것인지, 그리고 저런 한심한 사람들로부터 줏어들은 이야기를 일반화하여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는 저 멘탈리티는 또 얼마나 나이브한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싶고, 나아가 이런 정도의 사람이 한 나라의 국정 홍보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에 나 역시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글이 너무 비아냥으로 흐른 듯싶다(이해하시라. 이 수석의 글이 하도 비비 꼬인 억지성 글이다보니, 그 댓글 또한 딱 그 수준에서 놀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내가 이백만 수석과 무슨 웬수 진 것도 아니고.. 인간적으로 미안해서도 더는 못하겠다. 정리하자. 이백만 수석, 잘 새겨듣고 앞으로는 이같은 어설픈 짓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이 수석이 노무현 대통령의 댓글 쓰기에 대한 세간의 비판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반대에 빗대어 비판하고 있는 것은 논리적으로 범주착오에 의한 부당한 비판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댓글 쓰기에 대한 비판의 본질은 첫째, 국가 수반으로서의 업무 행위에 대한 지적이고, 둘째는 대통령의 댓글 쓰기가 갖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이다.

현 정권은 기회 있을 때마다 '시스템'을 강조해왔다.

시스템을 강조하는 정부라면 응당 각자의 업무 영역은 정해져 있기 마련일 것이다. 당연히, 대통령의 업무 영역은 이 모든 것을 지휘 감독 총괄하는 위치일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시스템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이겠는가? 새삼스럽게 '군군신신 부부자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각각의 고유한 영역에서 자기 할 바를 다 하는 데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댓글 행위를 문제 삼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 사람들은 묻는 것이다. 대통령의 댓글 쓰기가 과연 대통령의 고유한 영역에서 비롯되는 바람직한 행위인가? 하고.

이게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지극히 정당한 문제 제기고 지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이백만 수석한테는 이게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상한 비유까지 동원하여 반발하고 있는 것이 마치 이같은 문제 제기 자체가 아주 눈에 거슬려서 못 견디겠다는 모습이다(다른 맥락에서 해야 할 이야기지만, 이 수석의 이런 행태에서 보게 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권위의식 고취다. 의당 지녀야 할 권위는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주제에 있으면서, 정작 타파해야 할 권위주의를 내세우려 드는 행태가 이 수석의 글 행간마다에서 읽힌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나는 대통령의 댓글 쓰기 자체에 대해 굳이 반대하고싶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의 댓글 행위가 정당하게 옹호되기 위해서는 이백만 식의 어설픈 유비로 본질을 호도하려 들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물음에 정공법으로 답해야 할 것이다.

먼저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댓글을 다는 경우, 중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의 위치는 어디여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시스템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중간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중요한 위치의 중간자가 대통령의 개입으로 인해 자기 위치를 잃게 된다면 이것이 어찌 득보다 실이 더 크지 않다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다음은 대통령의 댓글 쓰기가 도대체 얼만큼의 효용성을 갖는가 하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이 수석은 '국민과의 소통'을 들어 대통령의 댓글쓰기를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 말 그대로 헛소리다. 구체적인 사례를 찾기 위해 멀리 갈 것도 없다. 얼마 전에 있었던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를 한번 보자. 그것을 두고 과연 국민 일반과 대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국민과의 대화라는 슬로건은 다만 하나의 타이틀이었을 뿐이다. 이는 이 수석도 알고 나도 안다.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모든 글을 다 카바하면서 댓글을 다는 일이란 애시당초 가능하지 않는 일인 것이다.

여기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의문은 '과연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댓글 쓰기나 하고 있을 정도로 그렇게 한가한 자리인가' 하는 것이다. 이 수석은 여기서 짐짓 회사 사장의 사례를 들어 대통령의 댓글 쓰기를 변호하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일개 회사 사장의 자리와 일국의 대통령의 자리를 동일시하고 있는 그 나이브한 발상 자체가 나로서는 경이로울 따름이다.

게다가 다시 백번 양보하여 이 수석의 논리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 수석이 사례로 든 회사는 소꿉장난 규모의 회사에서나 통할 법한 논리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 총수가 직접 나서 직원이 쓴 글에 댓글을 달고 다닌다고 한번 상상해보라.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기업의 주식이 휴지 조각 되는 일만 남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왜 그러냐고 따져 묻고 싶은 사람 있거든 메일 남기시라. 글이 너무 길어져서 더는 못 가겠다. -_-).

에니웨이,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치명적인 질문은 받은 적이 있다. 장인의 좌익 활동에 대한 질문이었다. 일반적이라면 으레 '연좌제' 운운하는 답변으로 궁지에 몰렸을 법 했지만 당시 노 후보는 달랐다. 그는 이 질문을 한마디로 무력화해버렸다.

"그렇다면 날더러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

질문의 본질과는 전혀 동떨어진 궤변이었으나, 다른 한편 노무현 후보의 수사학적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 명답이었다. 이백만 수석의 글을 보면서 노무현 후보의 이 말이 생각났다. 이 수석의 변명이 많이 어설프다는 점만 다를 뿐, 본질을 도외시한 수사학적 궤변이라는 점에서는 무척 닮아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수석은 어쩌면 노 후보의 저같은 수사적 기교를 학습하고팠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발끈하지는 마시라. 웃자고 해본 소리니까). 다시 에니웨이, 수사적 기교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특히 잘못된 수사는 오히려 기대한 효과와는 정반대의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백만 수석에게 '노비어천가' 부르지 말라고 주문하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1>
원래는 블로깅 문화 일반과 댓글의 부정적 기능에 대한 부분을 함께 엮어 이야기하려 했으나, 글이 길어지는 바람에 포기했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한다. 참고로, 아래 함께 엮여 있는 블로그와 싸이질에 대한 다소 도발적인 글 역시 이같은 의도에서 옮겨둔 것이었음을 밝혀둔다.
<덧붙이는 글 2>
아~ 깜빡 잊고 그냥 넘어간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백만 수석의 이같은 행위는 혹시 '공직을 이용한 책 광고'에는 해당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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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관계 2006/04/11 02:34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기존의 특권의식과 소통부재가 아닐까요. 비유자체는 억지스럽지만 하고자 하는 말 뜻은 확실히 알겠군요. 호불호를 떠나서 말이죠.

  4. 내일은 맑음 2006/04/11 11:20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이백만 수석의 글이 비약적인 면이 없는건 아니지만. 이글 또한 비약적인 글이군요.
    이글을 읽으면서 느낀건. 비판적인 글을 쓴것이 아니라. 단순히 비꼬는 글을 쓴걸로 밖에 않보입니다.
    무엇인가 비판적인 논리가 보이는것이 아니고. "니가 하는게 다 그렇지" .. 라는 수준의 비꼬기 위한 꺼리들을 늘어논 것밖에 없습니다.
    이백만 수석의 선배들은 다들 한심한 사람들이고. 직원의 글에 댓글을 대는 총수또한 한심한 사람이고. 바쁜사람은. 댓글도 못답니까? 바쁜시간 쪼개 글을 읽고 거기에 자신을 의견을 남기는게 잘못된겁니까? 이런 말을 하면 이글 주인장께선 웬지 이런말을 할거 같습니다. "바쁜시간 쪼개는 게 하니라. 한가하게 노는거라서 댓글도 남기는 거라고.."
    그리고 대통령의 댓글 쓰기가 갖는 위험성을 잘 모르겠습니다. 댓글 다는게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빼앗는 것입니까? 그럼.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댓글 다는것인지..
    무엇보다 대기업 총수가 직원이 쓴 글에 직접 댓글을 단다고 기업의 주식이 휴지 조각 된다는 생각이 참 신선하군요.

    • 하민혁 2006/04/11 15:38  편집/삭제  댓글 주소

      비꼬는 글 맞습니다. 비약하고 있다는 것도 맞구요. 같지도 않은 글에 정색하고 논문 쓸 필요는 없는 일 아닌가요?

  5. 양고기 2006/04/11 16:55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허허 다른건 몰라도 저 댓글도 안읽어보고 하는 말이라는것.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 큽니다.
    국회의원 사이트 몇군대 관리 해봤지만. 그들은 댓글이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아랫사람들이 대충 뭐라고 말해줄 뿐 실제로 본적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_-...

  6. 지나가던이 2006/05/12 19:43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글쎄... 같지도 않은 글에 정색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감정적인게 느껴집니다. 위에서 댓글을 다신 분 말마따나 하고자 하는 말은 확실히 알겠지만요. 비약하는 글에 비약으로 나오고 댓글을 읽어보지도 않았다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그게 말이 되냐고 비아냥 대는건 문제가 있습니다. 마지막 댓글에 대한 답변은 그냥 그런가요? 군요.
    어쨌든 이 블로그 안건 꽤 괜찮은 수확입니다. 상황을 보는 view가 다양해야 하니까요.

    • 하민혁 2006/05/13 00:49  편집/삭제  댓글 주소

      비록 블로그라 하더라도, 함부로 글쓰기를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블로그를 너무 사적이고 자유한 공간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같습니다. 님이 주신 것과 같은 지적.. 앞으로는 덜 받도록 애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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