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오늘도 모니터 화면만 쳐다보다가 하루를 마감한다.

언젠가부터 글이 써지질 않는다. 이유는 많다. '일상의 일에 부대끼다 보니..'라던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서..'라던가, 뭐 그런저런 이유들을 이리저리 끌어모아 댈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글을 쓰지 못 하는 게 그런 이유들 때문인가? 아니다. 일상의 일이 바쁘고 또한 구체적인 동기부여가 되질 않은 것도 글을 쓰지 못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나는 동력이 없다. 지난 7년여 동안 나는 제대로 공부를 해본 기억이 없다. 기왕에 충전된 동력을 쓰기만 했을 뿐, 한 발 물러나 자신을 충전할 기회를 가진 적이 없다. 지금 나는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일 뿐이다. 내가 쓸 수 있는 동력을 이미 다 소진해버린 빈 껍데기.

그러고 보니, 얼마전 유시민이 민주노동당과 조선일보에 대고 "공부 좀 하라" 말하던 게 남의 일 같지않아 보인다. 맞는 말이다. 공부 없이 말로만 풀다보면 어느 순간 그 말조차가 식상해진다. 스테레오 타입.

유시민이 말이 나와서 말인데(이거 이런 식으로 말을 풀면 꼭 마지막에 가서 결론도 없이 끝나고 마는데.. 뭐 그냥 가자), 최근에 유시민이 한 말들을 두고 인터넷이 꽤 시끄럽다. 유시민이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이게 웬 호들갑인가싶다. 유시민의 멘탈리티 자체가 원래 그 정도 아니었던가?

내가 보기에 유시민은 얼마든지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실제로 행동조차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유시민의 멘탈리티에서는 그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프에서 보니 어느 설법론자 하나는 유시민의 행동에 대해 또 뭐라뭐라 설법을 하면서 엄청시레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이 유시민의 본래 모습이다.

만일 그가 어떤 연유로 하여 유신정권과 대척되는 지점이 아니라 유신정권 쪽에 서 있었다면 그는 유신정권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을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전혀 논리적인 모순을 일으키지 않을 사람이다.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린치한 사건이나 자신이 둥지를 틀고 있던 동아일보에 칼을 들이댄 일이나 특정 이데올로기의 메신저 역할을 마다 하지 않던 mbc 백토 시절 등.

유시민의 공부는 자기합리화를 위한 공부

유시민은 진보적인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 그가 현재 무엇을 주창하고 있건, 그는 진보라는 코드에 걸맞는 좌파적 사고의 소유자가 결코 아니다. 유신정권쪽에 있으면서 유신찬가를 불렀다고 해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전혀 모순을 느끼지 않았을 사람이라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시민은 자기합리화에 강한 사람이다. 최근에 유시민이 보여주고 있는 '노빠'로서의 행태는 별스런 게 아니라 실은 원래의 유시민이 지닌 자연스런 행동 패턴인 것이다.  

그럼에도 유시민은 지금까지 본래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쳐왔다. 스타 탄생의 과정이 다 그렇듯이 유시민이라는 스타의 탄생에도 유시민 외적인 요인들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이른바 '시대정신'이라 칭하는 정치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그것이다. 그 흐름에 적절히 편승한 결과다. 그리고 거기에는 유시민 개인에 대한 '뻥튀기'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예컨대, '유시민의 항소문' 등이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핵심도 없는 이야기가 질질 끌리고 있다. 맺자).

공부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유시민이 민주노동당 사람들한테 공부 좀 하라 고 말한 건 적절했다. 꼭히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유시민의 그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작 이 말이 필요한 건 유시민 자신이라는 생각이다. 그가 무슨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하는 발언이나 행동들을 보면 유시민은 결코 자기 계발이라는 본래적인 의미의 공부를 통해 스스로가 가진 멘탈리티의 한계를 넘어서진 못했다.

유시민이 말한 '공부'가 싸움의 전략 전술적 측면에서의 공부를 의미하는 것이고 자기합리화의 공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유시민의 공부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현 단계에서 볼 때 그의 전술 전략은 주효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전략 전술이고 자기합리화인가 하는 부분에 이르면 그가 과연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그가 보여주고 있는 행태라는 건 원칙이나 철학의 문제 혹은 사회적 방향성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노무현정권을 지키는 친위대로서의 출세지향적 '노빠' 행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때문이다.

최근 유시민의 잇단 몇 가지 발언을 두고 '경악'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그 사람이 그동안 유시민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유시민의 인식틀과는 별개로 그의 개혁적 성향만은 높이 산 사람이기에 유시민의 연이은 돌출적 행태에 머리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우려'의 수준에서지 '경악'의 수준에서는 결코 아니다. 총총.

<2004/07/05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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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편지26] "'민주건달'님들 살림살이 확 나아지셨습니까?"

    Tracked from 홍세화의 똘레랑스 2006/04/21 04:37 Löschung

    &nbsp;&nbsp; 유럽에 있는 동안 저는 조국통일 인사들을 적잖이 만났습니다. 이역만리에서 분단된 조국을 바라보면서 통일 염원을 갖는 것은 민족 구성원으로선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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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비밀방문자 2006/04/13 13:23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하민혁 2006/04/13 20:24  편집/삭제  댓글 주소

      궁금했던 점을 알게 해주시어 고맙습니다. 다른 블로그들도 알았으면 하는 내용인데, 비밀글이라서 공개는 못하겠네요. ^^

  4. 지나가다 2009/09/23 13:44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글이 안써진다'는 식의 징징대기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구만...

    전매특허인 근거없는 정신분석기법의 연원도 오래된듯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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