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계에 실패했습니다"는 유시민의 반성문을 이제서야 읽었다(이 글을 처음 봤을 때는 몇 줄 읽다가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고 워낙 장문이기도 하고 해서 자세히 읽지를 않았댔다). 억울하다는 투고, 복장이 터진다는 투다.

결국 유시민의 '반성문'이란 자신의 잘못에 대해 국민에게 하는 반성이 아니라 권력의 핵심에 있으면서 그거 하나를 커버하지 못한 데 대한 통한을 토로하는,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는 방자하기 짝이 없는 당당한 선전포고다.

이해할만도 하다.

딴은 억울할만도 했겠다. 장복심이 일백만원 후원한 거나 서영석이 인사청탁한 거나 따지고 보면 딴 넘들도 다 그러는데 지네는 뭐가 그렇게 깨끗하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설래발을 쳐댈까싶기도 했겠다. 더구나 대가없이 받는 게 그게 뭐 대수이고 아는 사람한테 청탁 좀 하는 게 뭐가 문제겠냐는 인식을 갖고 있는 유시민으로서는 확실히 억울해 할만도 하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다른 건 다 접어두더라도 유시민이 자신을 변명하면서 동원하고 있는 수사는 영 밥맛이다. 장복심이 후원 건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건드리고 서영석이 청탁 건은 너희도 다 그래 하는 식으로 A 언론사 B 방송국 하면서 물고 늘어지는 방식 - 한마디로 더티하다. 이런 건 조선일보도 하지않을 플레이다. 게다가 변명이라고 봐주기도 힘든 변명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반성문'이라면서 자랑스레 선전까지 하고 있고, 오히려 당당해 하고 있다. 왜 이럴까? 무엇이 유시민에게 이런 당당함을 부여해준 것일까?

사실 일반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유시민은 일반인이 아니다. 입만 열면 부르대는 '개혁'의 선봉장이 아니던가?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어도 되고 남이 하면 청탁이지만 내가 하면 관행이 되는 게 개혁은 아닐진대는,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갖고 행동해야 하는"(이 말은 유시민의 유명한 어록 가운데 하나다) 정치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떠나 유시민이 일반인보다 더 진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그의 전력 때문이다.

유시민은 전력이 별로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다. 멀쩡한 시민을 프락치로 몰아 감옥을 갔으면서도 미필적 고의 비슷하게 그걸 민주화 투쟁으로 바꾸어 미화했는가 하면, 아주 열심히 칼럼을 기고하던 신문에 어느날 문득 등을 돌리고 나서는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그곳을 향해 비수를 날린 전력이 있고, 100년 가는 시민 정당 만들겠다면서 시민들 돈 걷어 당을 만들고 그래서 국회의원 되고 나서는 스스로가 그 당을 팽개치고 나간 전력을 가진 사람이 유시민이다.

저 아득한 신라시대 역사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법한 '진골' '성골' 나누자는 것도 아니고 시민이 주인 된 지가 언제인데 '진성' 당원이라는 기상천외한 타이틀을 만들어 돈으로 주인됨을 가르고, 그것도 모자라서 멀쩡한 시민을 하루아침에 '개미'로 만들어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면서 스스로는 마치 '개미대왕'이나 되는 듯이 행세했던 사람이 바로 유시민이다.

유시민을 국회의원에 당선시킨 것은 '개미'로 불리는 시민의 힘이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실 그건 시민의 힘도 아니었다. 주체적인 시민의 힘이 아니라 유시민이 만든 '개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개미'의 맹목적인 추종이 유시민을 당선시킨 것이었다. 민주당과의 연대는 없다던 스스로의 말을 뒤집으며 민주당과 연대를 하고(이걸로 유시민은 첫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다), 100년 가는 정당 만들겠다는 자신의 말을 1년도 채 되지 않아 팽개쳤어도(이걸로 유시민은 두번째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다) '개미'들은 말이 없었다.

겨우 몇몇 시민이 나서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자 유시민은 거침없이 그들을 "말할 가치도 없는 자들'로 비하했다.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시민을 '말할 가치도 없는 자들'로 매도하는 것도 얼척이 없지만, 대왕개미로서 아무리 거칠 것 없다 할지라도, 그가 최소한의 양식이란 걸 갖고 있고 반성적 사고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매도를 하기에 앞서 적어도 생활비 일부를 쪼개서 보태준 시민들의 돈이라도 먼저 돌려주고 난 다음에 해야 했을 일이다.

그러나 유시민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여전히 당당하기만 하다. 이런 유시민이니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 얼마나 복장 터지는 일이었겠는가? 자신을 나무래는 우매한 시민들에게 그가 얼마나 열불이 났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반성문이 반성보다는 오히려 비아냥과 오만으로 가득차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유시민의 반성문을 보고 있자니 그에게는 지금도 여전히 시민이란,  천상천하 지존의 자리에 있는 '대왕개미' 유시민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는 '개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만 보인다. 하기사 '개미들'이 낸 수백 수천만원의 후원금으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에게 그깟 몇 백만원 건네받은 걸 갖고 가타부타 말하는 것조차가 어쩌면 웃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저 반성문 아닌 반성문에서 유시민이 정작 하고싶었으나 차마 하지 못한 말은 다음과 같은 건 아니었을까?

"천하의 대왕개미를 몰라보는 무식한 개미들같으니.."  <통신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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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편지26] "'민주건달'님들 살림살이 확 나아지셨습니까?"

    Tracked from 홍세화의 똘레랑스 2006/04/21 04:41 Löschung

    &nbsp;&nbsp; 유럽에 있는 동안 저는 조국통일 인사들을 적잖이 만났습니다. 이역만리에서 분단된 조국을 바라보면서 통일 염원을 갖는 것은 민족 구성원으로선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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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나가다 2009/09/23 13:49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하主가 유시민에게 열등감을 느낄 급은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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