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보는 기사 하나가 눈에 걸린다. 금연 안지키는 국회…"법 만들땐 어쩌고" 국민들 눈총 이라는 세계일보의 신년기획기사(2006 이것만은 고치자)다. 법을 만드는 넘들이 그 법을 지키고 있지 않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게 어디 금연 문제 뿐이겠는가? 하다못해 새해 예산조차도 단 한 차례를 빼고는 회기 내에 처리하지 않는 자들이 바로 저들이다.


국회


이게 우리 사회 이른바 '지도층'이라고 하는 자들의 공통적인 인식 체계다. 안타까운 것은 이게 특정한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이건 마찬가지다. 상대를 향해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다가도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서면 희한한 특권의식으로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이것이 우리 사회 일반에 널리 그리고 깊게 뿌리박혀 있는 사회 의식이다. 그 자리에 올라선 누군가가 자기희생으로 혁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개혁의 시작과 끝이 바로 이 지점이어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고, 못내 주변과 불화하는 까닭이다.

특권을 갖지 못했을 때는 입이 주디가 되도록 혁파를 부르대다가도 자신이 그 특권의 언저리에라도 이르게 되면 자기희생은 고사하고 오히려는 '우끼지도 않는' 특권의식으로 '완장질'을 하려 드는 넘들에게 나는 웃어줄 수가 없는 것이다(슬프게도 나는 완장을 찬 이후 자기희생하는 넘을 단 한 넘도 본 적이 없다. <통신보안>

2006. 01. 02  



p.s.
변절한 자들이 항용 부르대는 소리가 있다. 그러지 말라 이르면 돌아오는 답은 늘 똑같다. '융통성이 없다'거나 '고지식하게 왜 그러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개혁이나 혁명은 원칙의 문제고, 당위의 문제다. 융통성이 허용되는 지점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footnote]이런 말 하면 으레 '레닌의 전략 전술이 어쩌고~' 하면서 설레발 치는 자들이 있다. 정색 하고 덤비는 이 치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계 바늘을 몇 십 년은 거꾸로 돌려 세상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는 짓을 보면 이 자들은 마치 어디 굴 속에라도 쳐박혀 지내느라 레닌의 동상이 광장에 거꾸러 넘어진 사실조차도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정신 나간 넘들이다. [/footnote]
그럼에도 저들은 늘 원칙의 문제를 융통성이라는 처세의 문제로 치환하여 그 안으로 기꺼이 숨어들어버린다. 교묘히. 아주 덥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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