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글을 쓸 때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 것은, 맨 처음에 무엇을 놓았어야 하는지를 아는 일이다.

22-23. 내가 새로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면 안 된다. 나는 재료의 배치를 새롭게 했다. 같은 말도 그 배치가 달라지면 다른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법이다. 테니스를 할 때 양쪽이 쓰는 공은 같지만, 한쪽은 그것을 더 잘 치지 않는가.

달리 배치된 말들은 다른 뜻을 만들고, 달리 배치된 뜻은 다른 결과를 나타낸다.

26-27. 말이란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과 같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난 뒤에 다시 가필을 하는 사람은 초상화가 아닌 상상화를 그리고 있는 셈이고

말을 억지로 꾸며서 대구를 만드는 사람들은 균형을 잡기 위해 불필요한 붙박이창을 만드는 사람과 같다. 그들의 기준은 정확하게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의 형식을 만드는 데 있다.

29. 자연스러운 문체를 대하는 경우 사람들은 아주 놀라워하며 마음속으로 대단히 기뻐한다. 한 사람의 작가와 만날 것을 기대하다가 한 인간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좋은 안목을 갖게 되고 책을 읽으면서 한 인간을 발견하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한 사람의 작가를 발견하고 매우 놀라는 경우가 있다. "당신은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다만) 시인으로서 말했을 뿐이다."


팡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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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사람들이 당신을 좋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

69. 너무 빨리 읽거나 너무 천천히 읽으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71. 사람에게 술을 조금도 마시지 못하게 한다면, 그는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너무 많이 마시게 해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80.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묻고 있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머리가 아프다고 말할 적에는 화를 내지 않으면서, 우리가 잘못 추론하고 있다거나 잘못 선택했다는 말을 하면 화를 내는 것인가?"

82.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 할지라도, 그가 만일 낭떠러지 위에 있는 커다란 판자 조각에 앉아 있게 된다면, 그의 이성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설명을 아무리 애써 설명하려 해도 그는 결국 상상력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범인들에 있어서랴... 많은 사람들은 그 일을 생각만 해도 얼굴이 창백해지고 온 몸에 식은땀을 흘리게 될 것이다.

87. "자신의 상상력에 의해 지배를 받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플리니우스)

90. "자주 일어나는 일에는, 설사 그 원인을 모르더라도 사람들은 그리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일은 기적으로 여긴다." (키케로)

100. 인생은 끝없는 착각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서로 속이고 서로 아첨한다. 아무도 우리 앞에서 우리 이야기를 우리가 없는 데서 하는 것처럼은 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의 결합이란 이같은 기만 위에 이루어져 있다. 만일 자기가 없는 데서 친구가 자기에 대해 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비록 그 친구가 진실하고 정당하게 말했다 하더라도 우정을 지속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란 이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나 위장과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차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남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도 피한다.  이같은 성향은 생래적인 것이다.

101. 만일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사람이 자기에 대해 이야기한 바를 안다면, 세상에 친구란 네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는 누군가가 이야기한 것을 때로 지각없이 본인에게 알려 줌으로써 일어나는 싸움만 보아도 익히 알 수 있다.

108. 어떤 사람이 자기가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단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111-112. 사람은 대개 오르간을 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대하면 된다. 이때 인간은 오르간과 같은 존재가 되는데, 그러나 그것은 동요가 심한 불안정한 오르간이다. 그 파이프 오르간은 올바른 음계로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보통의 오르간밖에 칠 줄 모르는 사람은 이 오르간으로는 화음을 내지 못한다. 기본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물에는 여러가지의 성질이 있고, 영혼에도 갖가지의 성향이 있다. 왜냐하면 영혼에 나타나는 것 가운데 단순한 것은 없으며, 또 영혼은 어떤 대상에도 단일하게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같은 일을 두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원인이 있다.

114. 나는 같은 사물이라고 해서 이제까지 그것을 똑같이 판단한 적은 한번도 없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평가할 수는 없다. (작품을 쓰고 있는 사람 자신이 동시에 그 작품에 대한 비평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멀리 떨어져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할 것인가? 한번 생각해보라.

122-124. 시간이 고통이나 싸움을 치유해 주는 것은 사람이 변하여 전과는 다르게 되는 때문이다. 모욕을 준 사람도 모욕을 받은 사람도 이제는 이전의 그들은 아닌 것이다.

십 년 전에 사랑한 사람을 이제 사랑하지 않는데도,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녀가 언제나 이전의 그녀와 같을 수 없으며, 그 역시도 이전의 그가 아니어서다. 예전에는 그도 젊었고 그녀도 젊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녀가 그때와 같은 여자라면 아마 지금도 역시 그는 그녀를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각각 다른 각도에서 볼 뿐만 아니라, 다른 눈으로도 본다. 사물을 똑같이 볼 수는 없는 것이다.

126. 인간이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으되, 자립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만족을 못하는 존재이다.

129. 우리의 본성은 활동에 있다. 완전한 휴식은 죽음이다.

130. 만일 어떤 병사나 노동자가 자기의 고생을 불평한다면, 그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말고 내버려두는 게 좋다.

133-134. 비슷한 얼굴 둘이 하나씩 따로 있으면 조금도 우습지 않지만 두 얼굴이 같이 있게 되면 그 닮은 점 때문에 웃게 된다.

실물은 사람의 눈길을 끌지 않지만 그것을 비슷하게 그려 놓으면 감탄을 자아낸다. 그림이란 이렇듯 허황한 것이다.

136. 사소한 게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사소한 게 우리를 괴롭히는 때문이다.

148. 우리는 자부심이 매우 강해서, 자신이 세계에 알려지고, 자기가 죽은 뒤에 태어날 사람에게까지도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기를 바란다. 또 우리는 너무나 공허해서 주위에 있는 대여섯 사람의 칭찬만으로도 유쾌해지고 만족해한다.

149. 사람은 그가 지나가는 마을서의 평판에는 별로 개의치 않지만, 그러나 그곳에 잠시 체류해야 하는 경우 거기에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얼마만큼의 기간이 필요한가? 그것은 우리의 헛되고 보잘 것 없는 삶의 길이에 비례한다.

150. 허영심이란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닻을 내리고 있어, 군인이나 심부름꾼, 요리사, 인부들도 제각기 자랑을 하며 저마다 칭찬을 받고 싶어한다. 철학자까지도 그것을 바란다. 영예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훌륭하게 썼다는 영예는 얻고 싶어하며, 독자도 그것을 읽었다는 영예를 갖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도 어쩌면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151-153. 칭찬은 사람을 어릴 때부터 망치는 것이다. 참 이야기를 잘하네! 정말 잘 만들었어! 아주 영리하구나! 등등.

오만 - 호기심은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알려고 한다. 그렇지 않고,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단지 보는 재미만을 즐길 뿐,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전할 희망이 없다면, 항해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화제에 오를 수만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목숨까지도 바친다. 허영, 도박, 사냥, 방문, 연극, 거짓된 명성의 영원한 지속.

162. 인간의 헛됨을 충분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연애의 원인과 결과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 원인은 <내가 모를> 그런 것이지만, 그 결과는 무서운 것이다. 이 <내가 모를>, 거의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한 것이 지구 전체와 군주들과 군대와 전세계를 움직여놓는다.

클레오파트라의 코, 그것이 만일 조금만 더 낮았더라도 지구의 모든 것은 달라졌을 것이다.

164. 인간은 분명히 생각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그것은 인간 존엄성의 총화이고 가치의 총화이다. 인간의 의무는 올바르게 생각하는 일이다. 이러한 생각의 순서는 우선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창조주와 자기의 목적으로 향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 채, 오히려 춤을 추거나 악기를 켜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쓰거나 놀이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또한 싸움을 하거나 우두머리가 될 생각들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두머리가 무엇이고 인간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165. 우리의 상태가 정말로 행복한 것이라면,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는 않을 것이다.

166. 죽음은, 죽어 보지도 않고서 그것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

168. 인간은 죽음과 비참함과 무지를 고칠 수가 없었기에,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그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170. 만일 인간이 행복하다면, 신이나 성자처럼 오락에 빠지는 일이 적을수록 더욱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오락으로 유쾌해지는 것도 행복한 일이 아닌가? 아니, 그렇지 않다. 오락은 다른 데서, 다시 말해 외부에서 오는 것이다. 그것은 의존적이다. 그러므로 오락은 피하기 어려운 고뇌를 일으키는 숱한 사건들에 의해 혼란스럽기가 싑다.

171. 오락은 우리의 비참함을 위로해주는 유일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비참함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다. 왜냐하면 오락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며,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멸망시키는 때문이다.

오락이 없으면 우리는 권태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이 권태는 우리가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찾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락은 우리를 즐겁게 하여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에 이르게 한다.

183. 우리는 낭떠러지가 보이지 않도록 뭔가로 눈을 가리고는 태연하게 낭떠러지로 달려가고 있다.

204. 일 주일의 생애를 헛되이 보낸다면 백 년의 기간도 헛되이 보낼 수 있으며, 일 주일의 생애를 헌신할 수 있다면 백 년의 기간도 헌신할 수 있다. 만약 일 주일을 포기한다면 전 생애를 포기해야 할 것이며, 일 주일을 희생하지 않으면 전 생애를 희생해야 할 것이다.

205. 내 생애의 짧은 기간이 그 이전과 이후의 영원한 시간 속으로 흡수되고, 내가 차지하고 내가 보고 있는 이 작은 공간이 내가 모르고 나를 모르는 무한히 넓은 공간 속으로 잡기고 있음을 생각할 때, 나는 내 자신이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과 놀라움을 느낀다. 왜 나는 저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으며, 왜 그때에 있지 않고 지금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여기에 두었는가? 누구의 명령과 지시로 일 장소와 이 시간이 내게 주어진 것인가? - 단 하루를 머물렀던 나그네의 추억이여!

206.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는 두렵다.

209.  네 주인에게서 사랑과 격려를 받는다고 해서 이제는 노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노예여, 너는 은혜를 받기는 할 것이다. 네 주인이 지금은 너는 칭찬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 너를 때릴 것이니.

211.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을 사귀면서 마음 놓을 수 있음을 기뻐한다. 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비참하고 무능한 그들은 결코 우리의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사람은 혼자서 죽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혼자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253. 지나친 것 두 가지. 이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이성밖에는 인정하지 않는 것.

257. 이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신을 발견하여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신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애써 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며, 나머지 하나는 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찾으려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첫째 부류의 사람들은 도리에 적합하여 행복하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도리에 어긋나므로 어리석고 불행하다. 가운데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불행하지만 도리에는 합당하다.

260. 어떤 일을 때로 들었다고 해서 그것을 믿음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자신을 아무것도 듣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에 두고서, 무엇이든 자신에 견주어서만 믿어야 한다. 자신을 믿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동의와 자기 이성의 충실한 목소리여야 하며, 결코 다른 사람의 것이어서는 안된다.

277. 감성은 이성이 모르는 그 자신의 바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수많은 사실을 통해 이를 알고 있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과연 이성에 의한 것이겠는가?

280. 신을 안다는 것에서 신을 사랑하는 데까지, 그 사이에는 얼마나 먼 거리가 가로놓여 있는 것인가!
 


  

<덧붙이는글> 3편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말 그대로 '예정'임다. 12년째 이어지고 있는. -_-)

신의 본질과 노름의 비유

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은 파스칼이 들고 있는 노름의 비유다. 파스칼에 의하면, 신을 믿지 않는 것보다는 믿는 편이 더 낫다고 한다. 그것은 비록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신을 믿는 것이, 신이 존재하는데도 신을 믿지 않는 것보다는 그 손실이 훨씬 덜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인데... 순전히 확률상으로 보더라도 신을 믿는 편이 보다 더 합리적일 거라는 얘기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만일 신이 존재하는데도 믿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얼마나 큰 신의 저주가 있을 것이던가. 신을 믿는 편이 구원의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증가시켜주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정녕 신을 믿어야 한다는 말에 찬성한다.
그렇지만 이런 가정이 왜 사실이어야 하는 것인가? 한 영혼을 단지 믿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영원히 저주할 정도라면, 그리고 그런 무시무시한 신이라면 나는 그런 신은 어떤 이유에서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위의 얘기는 어딘가에서 업어온 글인데 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파스칼의 [팡세]라는 책을 구해서 <도박의 필요성>이라는 장을 찾아 읽을 일이다. 한 장 전부를 다 읽을 필요는 없고 그 장 후반부의 '무한(無限).무(無)'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곳에서부터 보아도 충분하다. 번역본은 넘쳐날 정도로 많지만 조잡한 번역이 대부분이므로 선택에는 신중을 기할 일이다.

p.s. 참고로, 정말 아직도 <팡세>라는 책을 말로만 들어 알고 있다면, 이번 기회(?)에 하나 장만해서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다. 우리는 너무 자주 원본 텍스트는 제쳐두고 이차 저작물을 통해 얻게 된 자기식으로의 텍스트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대강 그런 얘기일거야... 하고 넘겨짚으면서. 얘기가 겉돌게 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1998. 09. 16. 03: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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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너바나나 2009/02/02 09:51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44. 사람들이 당신을 좋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

    이런 친절한 글까지 보니 아무래도 팡세를 꼭 읽어야겠구만요. 아주 기냥 구구절절 각자(覺者)의 얘기로 채워진 듯싶구만요. 위에 보이는 범우사 거로 읽으면 될는지요?

    • 하민혁 2009/02/02 13:14  편집/삭제  댓글 주소

      님 블로그에 갔다가 팡세 얘기가 나왔길래 다른 곳에 올렸던 글을 재탕으로 써먹은 겁니다. 암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무신론자라 해두요. '팡세'라는 말 자체를 하나의 장르로 만든 책이니까요. 범우사판은 그 동네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올려둔 겁니다. 무난하지 않을까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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