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종 올바른 사람들 공동대표가 다시 '여의도 폭파'를 주문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의원들께'라는 성명서를 통해서다. 성명서에서 박 대표는 이른바 '미디어법' 파동과 관련해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헌법 46조의 국익우선 양심직무의 의무를 좇아 국회의원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의원의 자율권은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국회의원이라면 이 '자율권을 짖밟는 자'들에게 당당히 맞서야 한다는 논리다. 박 대표는 이번 미디어법 논란에서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패거리주의에 빠진 한나라당 의원들이 우리 안에 갇힌 전사,  똘마니로 전락한 모습을 확연하게 보여줬다는 것이다.


여의도

왜 우리는 여의도를 폭파해야 하는가



박 대표의 이같은 주장은 지난 해 그가 발기한 '올바른 사람들'의 취지문, "왜 여의도를 폭파해야 하는가"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 87년의 6.29. 선언이후 절차적 형식적 민주화는 한 단계 이루어졌으나, 민주화의 내실은 갈수록 퇴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붕당정치에 빠진 국회의원들이 헌법적 규범을 철저히 실천하지 않음으로써, 국회를 소수기득권자들이 지배하는 부패정당, 반국민적 의원후보공천, 의원의 자율권이 훼손 능멸된 난장판 국회로 만들어 민주화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보아 박 대표의 주장에 틀린 말은 없다. 그러나 성명서를 읽는 기분은 도무지 공허하기만 하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말이다. 그렇다. 박찬종의 말은 틀린 데는 없지만, 넌센스 - 말 그대로 뜬구름 잡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단언컨대, 박 대표의 저 말에 공감하고 움직일 국회의원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은 다른 누구보다도 박 대표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박 대표는 이른바 '독불장군'으로 실패한 가장 전형적인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런 정치인이 자신의 길을 좇으라 하는데, 실패 확률 100%인 그 길에 따라나설 국회의원이 어디 있겠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에 우리 정치의 현실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박 대표 자신이 바로 이 현실의 산 증인이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엄연한 정치 현실을 외면한 곳에서 하는 정치적 주장이란 그야말로 넌센스다. 그렇다면 박 대표는 왜 이같은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변> 모른다.

 

다음은 박찬종 '올바른 사람들 공동대표'가 '한나라당 의원들께' 보내는 성명서 전문이다.

성명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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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무한 2009/03/04 01:32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그것은 말입니다.
    지리학적 영향을 빼 놓지 않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여의도란 본시 강 중간에 위치한 '섬'으로,
    남쪽의 금(金)의 기운과, 북쪽의 토(土)의 기운으로,
    금요일 토요일 다음이 무슨 요일 입니까?

    네, 바로 일요일 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만 갔다 하면, 일단 쳐지고 보는 겁니다.
    빠릿빠릿하던 젊은피들도 그곳에 들어가면
    '하는 일 없어도 피곤하다'는 호소를 쏟아내는 것입니다.

    생물학적 영향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한강 부근의 물고기들,
    그리고 빌딩 숲에서도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길냥이들,
    거기에 창문에 찍, 싸고 돌아가는 새들의 기운으로
    '짬뽕'의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찬물과 더운물이 만나면 미지근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연애할 때는 봄이지만, 결혼하고 나면 겨울이 되버리는
    남녀지사 연애불변의 법칙에도 해당되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위에서 말한 이야기들은 '허위사실'로 유포까지는 하지 않고 이렇게 밝혔으니
    누구처럼 끌려가서 콩밥먹으며 영양보충은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래도 만에 하나 제가 잡혀가거든, 전 신동아를 본 적도 없고,
    인터뷰는 하지 않았으니 하민혁님께서 강력하게 억울함을 호소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풍수지리학자요 생물학자, 윤무부 교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교수 무한이다.'
    라고 주장할 히드라 같은 녀석은 없겠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으니 말입니다.

    박찬종씨가 정치에 다시는 발을 담그지 않겠다며
    건전한 비판을 끊임없이 보내준다면,
    저는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라도
    그래도 일편단심 꺼지지 않는 사랑을 보내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단, 이게 소몰이 창법처럼 표몰이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라면,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라는 전녀옼(오타입니다) 씨의 책을
    착불로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발랄했나요?

    포스팅을 하나 준비하다가 너무 졸려서 오늘은 쉬어야 겠습니다.
    주말에 몇 시간 못잤더니 화요일까지 복사기로 복사한 하루가 되는군요.
    뿌옇습니다.

    일단, 잠자리에 들겠습니다.
    주무세요.
    내일뵙죠 ^^

    • 하민혁 2009/03/05 09:49  편집/삭제  댓글 주소

      이 댓글 말입니다. 그냥 읽으면 되는 거지요?

      분석하느라고 혼 났습니다(제가 분석 전공입니다. '무한이다~'하는 거 말고 진짜 전공 ^^). 근데, 한참을 분석해놓고나니 이건 뭐.. 아무것도 없잖아~(요기까지는 꼭 장기하 버전으로 읽어주세요. 근데, 비닐장판에 짝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어쩌고 하던 그 장기하가 실은 잘 나가는 강남 청년이라지요? 하기사 원래 진짜 잘 나가는 애들한테는 99년식 소나타 2.0도 소품용으로 요긴할 때가 있다 하더라구요. 우리 얼라가 아주 좋아하는 노랜데..)요.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저 글을 처음 봤을 때가 흐리멍틍..한 상태였던 터라 크게 웃지도 못 하고 입가에 살짝 미소만 띠었지만.. 무튼. 발랄한 글 잘 읽었습니다. : )

      <덧> 박찬종씨에 대한 지적은 만일 그가 님의 글을 본다면 뭐라 답할지 궁금해집니다. 박찬종씨게는 일종의 딜레마가 아닐까싶은데요. 쓰다 중단한 부분을 덧붙이게 되면 직접 그쪽 사이트에 가져가서라도 그의 답을 꼭 함 전해듣도록 하겠습니다.

  4. 하민혁 2009/03/06 17:4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음. 이번엔 박찬종...

    박찬종이 실패자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지요. 그건 당연하고.
    사람은 관뚜껑 닫을 ㅤㄸㅒㅤ 비로소 실패와 성공을 알 수 있는 거지요.

    다만 박찬종이 머리를 잘못 쓴 것은 확실합니다.


    박찬종에 대한 저의 기억들입니다.
    이런 박찬종도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통령도 시험쳐서 뽑으면 박찬종이라는.(장덕진씨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고 하긴 하더라만. *장덕진-박대통령의 처조카사위. 고시3관왕 )소릴 한때 들었죠.

    박찬종은 박정희대통령시절, 30대의 잘 나가던 검사였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부산 서구의 김영삼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차출해서 정치에 입문합니다.
    처음 김영삼 의원과 붙어서는 낙선하죠(소선거구제).
    유신이후 첫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삼 의원과 함께 2등당선합니다.(유신하 국회의원선건는 1구 2인선출제) 아마 이때가 37세 였을 겁니다. 당시 최연소였지 않나싶네요.

    박정희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암살되고 나서, 공화당 국회의원이든 박찬종의원은-당시 잘나가는 소장파였죠- 소위 [공화당 정풍운동]이라는 것을 벌입니다.

    쉽게 말해서, 김종필씨가 당시 박대통령의 뒤를 이어 공화당의 총재가 되었는데, 김종필씨도 구세대 인물이니 물러나라는 압력을 가한 사건을 말하죠.

    이로써 80년 초, 당이 깨질 위기에 처하고, 김종필 총재는 박찬종, 오유방등 소위 정풍파 8인(?)의원을 당에서 제명합니다.

    그후 다 알다시피 전두환의 군부정권이 다시 시작되고, 박찬종은 이때 여당생활을 청산하고 야인으로 남습니다.

    80년대 후반 정치규제가 풀리면서, 박찬종은 소위 고대앞 삭발시위 사건을 주도하는 등, 여당정치인에서 완전한(?) 야당투사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야당에서 양김씨와 정치를 함께 하지요. 이때가 가장 잘 나갈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보기엔.

    그후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김동길 교수와 국민당 각목폭력 전당대회를 하기도 했던 구시대 인물이 되어가죠.

    우당회를 만들어 대선에도 나가고 100만표도 얻고... 누구나 당선될거라고 했던 서울시장선거에서 조순씨에게 패한후 조직의 중요성을 절감, 다시 한번 여당으로 변신, 김영삼의 신한국당에 영입되어 국회의원선거에서 서울시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이회창씨와 대립각을 세우죠....
    그리고 97당내 경선후 이에 불복하여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부산에 와서 이인제를 도와주다가 부산에서는 완전히 배신자가 되었죠..

    아참,
    재작년 4.13총선때 부산에서 민국당으로 나왔다가 또 낙선. 이젠 부산에선 정치생명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론 어찌될지?

    정치무상이고 화무십일홍입니다.
    대선출마했을 때 진 빚때문에 아직도 빚 독촉을 받고 있다고 하네요.

    박찬종씨가 이렇게 된 이유는 한마디로, 정세판단력이 이인제나 다른 라이벌보다 뒤졌고, 지나치게 눈앞의 판세만 좋았기때문입니다. 좀더 길게 보고 정치를 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올해는 대선의 해. 박찬종씨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옵니다.
    과연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에피소드 둘
    1.박찬종씨는 서울법대에 가지 못하고 서울상대에 갔는데 그 이유가, 고등학교때 공부를 게을리 해서?라고 합니다. 즉 경기고 다닐때, 제2외국어를 하지 않아서, 법대에 가지 못하고 2외국어가 없는 상대를 간 겁니다. 실제로 고2때까지는 성적도 별로 좋지 않았는데, 고3이 되면서 서울법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험치기 얼마전에 입시요강에 서울법대의 경우 제2외국어가 추가되었다고 하지요.

    2.결혼상대는 고등학교시절 만난 경기여고생인데, 이분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그여자분 말로는 데이트중에 박찬종씨가 늘 종이쪼가리를 교복 안쪽 포킷에 넣어다니면서 시간날때마다 읽길래 뭐냐니가 보여주는데, 헌법조문이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다니는 학생이 헌법전을 ㅤㅉㅣㅅ어서 외우고 있었던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박씨는 상대 가서도 사법시험 쳐서 검사했죠. 그후 행시와 CPA도 합격하고. 아무튼 고시 3관왕)

    즐딕~~

    [질문] 박찬종은 정치계에서 실패자이다?
    [답변] 박찬종에 대해서 gksrufp10 / 02.01.03 01:55
    http://blog.empas.com/chemi1st/3212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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