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소설 <유자소전>을 읽었다.

최수철이 쓴 <얼음의 도가니>를 읽느라고 기진해 있었다.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어 베갯머리로 읽기 시작한 소설이었다. 한숨에 읽고, 그리고 일어나서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지금 새벽 기도를 나가야 하는 아내의 잠을 망쳤으면서도, 기분은 쾌하다.

<유자소전>은 실전소설이다. 작가가 한 친구의 생애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 친구의 이름은 '유자'이고 그는 길지 않았던 자신의 일생을 온몸으로 살다 간 사람이었다.


유자소전

이문구의 <유자소전>


실로 그의 생애는 뚜렷하고 우뚝한 것이었다. 이 소설은 질곡이 많았던 우리의 현대사에 관한 기록이면서 친구 유자를 애도하는 작가의 조사이고 그를 기리는 찬사이다.

유명이 갈렸건만 아직도 그대를 찾음이여
오롯이 더불어 살은 진한 삶이었음이네.
수필이 되고 소설이 되고 시가 되어 남음이여
그 정신 아름답고 향기로웠음이네.
아아 사십 중반에 만년이 되었음이여
남보다 앞서 살고 앞서 떠났음이로다.
붓을 놓으며 다시금 눈물 젖음이여
그립고 기리는 마음 가이없어라.

이 소설은 친구가 부르는 사모곡이다.

이 소설에는 감동이 있다. 여기에는 예의 저 최수철이 시간과 힘의 무익한 낭비고 소모일 뿐이라며 폐기 처분해버린 그런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있다. 최수철의 소설에서와 같은 강팍한 감정이나 지나친 긴장을 이 소설은 넉넉한 세상보기와 구수한 이야기로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진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세상살이가 팍팍할수록 아쉬어지는 것은 어쩌면 저러한 구수함과 넉넉함일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이런 생각이 행여 현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친구 하나는 이런 내 생각에 분명한 경계의 눈길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을 더하게 호도하는 것은 바로 저 지나친 강박 관념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허나 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자의 생각에는 여기에서 다 드러낼 수 없는 나름대로의 배경이 놓여 있겠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한 인물의 생애를 하나의 짧은 이야기 속에서 이만큼이나 훌륭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은, 그리하여 이만큼이나 생생한 감동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작가의 탁월한 이야기 능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최수철이 말한 바, 소설이 하나의 압축 파일이라는 표현은 역설스럽게도 이 소설을 두고 볼 때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그때를 아십니까!

유자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있는 소설의 초반부는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작가의 이야기 능력은 한낱 글에 지나지 않는 소설을 가히 아름다운 한 편의 영상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주인공 유자의 어린 시절을 읽는 일은 마치 아름다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그 영화의 주인공은 비단 유자만이 아니다. 때로는 가슴 아리는 서글픔으로 때로는 달뜬 흥분으로 안겨오는 유자의 어린 시절은 바로 우리 자신의 어린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 무렵은 바로,
성냥 하면 천안 조일표, 고무신 하면 군산 만월표밖에 몰랐던 시절, 그러니까 지금은 우둥퉁한 노파가 되어 십중팔구 하염없이 추억이나 되새기고 있을 조미령이 일쑤 새파란 과부로 분장하고 나와서, 밥만 먹고 잠만 자던 촌사람들의 무딘 가슴을 이리 집적 저리 집적하여, 육백을 치면서 조인다고 조여도 국진 열 끗이 목단 열 끗으로밖에만 안 보였던 어수룩하던 시절

이었으며, 또한 직업적인 선거꾼이 유세장마다 몰려다니며 민주당 후보의 확성기 줄부터 끊어놓고 난장판을 벌이던 그런 자유당 말기의 시절이기도 했다.

주인공 유자는 육이오 난리 이듬해에 작가가 다니고 있던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다. 그리고 전학하고 며칠이 되지 않아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낸다. 어린 시절의 그는 확실히 우리와는 다른, 그래서 우리의 추억 속에서 쉬이 그 존재를 기억해낼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 아무데서나 주워대는 그 입담이 밑천이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른 아이들이 밥 먹을 때 모이를 먹고, 다른 아이들이 죽 먹을 때 여물을 먹었는지, 나이답지 않게 올되고 걸었던 그 입은, 상급생이나 선생님들 앞에서도 놓아먹인 아이처럼 조심성이며 어렴성이라곤 없이 넉살좋게 능청을 떨어대었던 것이다.

그러나 명물은 되잖게 입만 되바라졌다고 해서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숫기가 좋고 붙임성이 있었다. 예컨대,
그는 보매보다 반죽이 무름하고 너울가지가 좋아 붙임성이 있었고, 싸움난 집에서 누룽지를 얻어먹을 만큼이나 두룸성이 있었으며, 하다못해 엿장수를 상대로 엿치기를 해도 따먹은 엿토막이 앞에 수북할 정도로 눈썰미와 손속이 뛰어난 터수였다.
나이가 한참이나 위인 중학생들과 예사로 너나들이를 하고, 가는 데마다 시덥지 않은 성님과 대가리 굵은 아우가 수두룩했던 것이 다 그와 같은 사실을 증명하던 일이었다.

여기서 그의 어린 시절을 다 더듬고 있을 수는 없다. 써커스와 가설 극장의 국민학교 시절과 "어금니 꽉 다물어, 안 그러면 이빨 안 남어나"로 겁을 주고는 두 볼을 사정없이 처돌리던 호랑이 실업 선생의 중학 시절을 거치면서 그의 학창 시절은 끝이 난다.

주인공 유자의 청년기와 장년기, 그리고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추억하는 소설의 중반부와 후반부를 읽는 것 역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다. 주인공 유자가 살아가는 삶은 바로 우리 자신이 살아온 그 삶이고 그가 부딪치며 살아온 역사가 바로 우리가 부대끼며 겪어온 그 역사인 때문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과연 우리가 그가 살아온 것만큼이나 그렇게 치열하고 올곧게 살아왔는가 하는 점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것 또한 각자의 삶에 대한 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영사기사의 꿈으로 시작된 그의 사회 생활은 유세장의 확성기 줄을 손보아 주면서 야당 붙이가 되고 사월 혁명의 여덕으로 반짝 경기를 누리기도 한다. 정치 식객 생활은 그러나 오월의 군사 정변으로 마감되고 그의 길은 군대 생활로 이어진다.

당시 '군대는 가면 숟가락도 놓기 전에 꺼지는 배로 하여 허천들린 듯이 먹어대던 시대였지만, 그의 병영 생활은 훈련병 시절부터 배를 곯아 본 일이 없었다. 입이 벌어먹인 덕이었다.' 입영 열차에서 우연히 얻게 된 당사주책과 천세력이 그의 타고난 입담을 바탕으로 그를 유도사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해서,
입소 동기생들이 땡볕에서 낮은 포복이다, 높은 포복이다 하고 군살을 빼는 동안, 그는 도사답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군살이 찔 것 같은 그늘에 앉아서 졸(卒)을 함부로 죽여가며 초한전(楚漢戰)으로 실전 훈련을 쌓았고, 궁이 면줄에 몰릴 지경으로 다된 판을 붙들고 늘어져 빗장을 부르는 흘떼기 장기와, 보리바둑 주제에 반집짜리 끝내기 패로 시간을 끌면서, 남들이 다들 어려워 했던 신병 시절을 유감없이 마쳤다.

헌병으로 근무하면서 자동차 운전까지를 배운 그는 제대를 하고 난 얼마 뒤에 재벌 그룹 총수의 승용차 운전대를 잡는다. 그의 열정적인 독서 생활이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다. 그러나 그의 승용차 기사 생활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는 총수의 사생활에 대한 불경죄로 좌천되어 노선 상무로 근무케 된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이 노선 상무 시절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여기서 보여 주고 있는 그의 남다른 노력은 실로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엿보는 일은 오로지 독자의 몫일 터다.

다만 그의 운전 윤리에 대한 댜음과 같은 전언은
꼭 이즈음의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아 이 자리에 그대로 옮겨 본다.
그는 운전자의 운전 윤리에 누구보다도 반듯하였다. 그러므로 운행 중에 때아닌 곳에서 과속으로 앞지르기를 하거나, 옆에서 끼어들어 진로 방해를 하거나, 차선을 함부로 넘나들거나, 신호등이 바뀌기 전부터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거나, 운전 상식이나 도로 질서에 도전하는 자를 보면, 매양 혼자말처럼 중얼거리기를 잊지 않았다.

"츤한늠.... 저건 아마 즤 증조할애비는 상전덜 뫼시구 가마꾼 노릇허구, 할애비는 고등계 형사 뫼시는 인력거꾼 노릇 허구, 애비는 양조장 허는 자유당 의원 밑에서 막걸리 자즌거나 끌었던 자식일겨. 질바닥서 까부는 것덜두 다 계통이 있는 법이니께."

그리고 이제 유자는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열정적이고 올곧았던 그의 삶을 뒤로 한 채.
이에 그의 불꽃 같은 삶을 기리고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하는 두 편의 시가 이 소설에는 실려 있다. 그 가운데 한 편은 이미 이 글 허두에서 소개한 이문구 씨의 것이고 아래에 있는 산문시는 시인 이시영 씨의 것이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유자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기에 그 전문을 옮겨 적는다.

제목은 '유재필 씨'이다.

비가 구죽죽이 내린 날, 유재필 씨의 시신은 영구차에 실려 답십리 삼성병원 영안실을 떠났습니다. 그 뒤를 호상 이문구 씨가 따랐습니다. 번뜩이는 익살과 놀라운 재기로 수많은 사람들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었지만 자신은 이 지상에 한 편의 소설도 시도 남기지 않은 채 새파란 아내와 자식들을 남기고 갔습니다.

오늘은 또한 벗 채광석의 일백 일 탈상날이기도 합니다. 바로 일백 일 전 오늘 유재필 씨는 채광석 장례의 지관이 되어 이산 저산을 뒤지며 터를 잡고 돌집에 내려와서는 '시인 채광석의 묘'라고 새긴 돌값을 깎았습니다. 돌값을 깎고 내려와선 양수리 한강변에서 장어를 사먹었던가요.

햇빛에 그을은 새까만 얼굴과 단단한 어깨, 넘치는 재담에서 우리는 그의 죽음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길지 않은 생애의 대부분의 직업이 죽은 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사고 처리반 주임이었으니까요. 죽음은 어쩌면 그와 가장 친숙한 길동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 않은지요. 그는 우리들을 잠시 놀라게 하려고 이웃 마실에 간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일백 일 전에 세상을 떠난 광석이와 그를 묻고 돌을 세운 유재필 씨가 한강변의 이산 저산에서 만나는 날입니다.

"잘 있었나?"
"예, 형님 어서 오십시오. 제가 이 곳에 좀 먼저 온 죄로 터를 닦아놨습니다.
야, 얘들아 인사드려라, 재필이 성님이다. 소설가 이문구 씨 친구."
"이문구 씨가 누구요?"
"야 씨팔놈들아, 저세상에 그런 소설가가 있어!"

유재필 씨는 아직 아무말이 없습니다. 남들이 묻힐 자리를 찾기 위해 수차례 오갔지만 아직은 좀 서먹한 산천과 무엇보다도 세상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슬픔이 뼈끝에 시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구는 잘 갔는지, 그 자식은 내가 없으면 어려운 일 당했을 때 뉘를 찾을지도 궁금하여 안심이 안됩니다.

"형님, 제 교통 사고건 맡아 처리하시느라고 수고 많으셨다메요. 저번 사십구재 때 내려가서 가족들이 얘기하는 것 들었습니다. 술도 한 잔 못 받아 드리고....."

그러나 유재필 씨는 아직 말이 없습니다. 저 세상에 비가 내리는지 누운 자리가 좀 끕끕합니다. 그리고 강물소리가 시원히 들리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덧붙이는글> 진짜 재밌는 얘기는 2편에 있습니다. -_-
<덧2> 김기자님, 앞으로 이런 글만 올리면 되나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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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너바나나 2009/03/13 01:50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캬~ 맛깔나는 저 언어들..

    이번엔 그 2탄이란 놈을 믿어도 되남유!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런 글만 쓰시면 파워블로그가 되실 수 있구만요.

    • 하민혁 2009/03/13 11:46  편집/삭제  댓글 주소

      이문구씨 소설 속 이야기는 살아 있는 말들의 잔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2탄은.. ㅎㅎ 이번에는.. 치토스 아니되어야 할텐데요. 시절이 하 수상해야 말이지요. ^^

      비도 오고, 일도 하기싫고(같이 일하던 친구 하나가 요즘 빠진 터라 북치고 장구 치고.. 전화받고.. 거의 기진맥진입니다. -_-), 오늘은 일찍 잠이나 자야겠습니다. 존밤.

      <덧> 산에서 산 적이 좀 있는데요. 그때 자칭 '거사' 한 분이 그러더라구요. 당신은 천상 산에서 살아야 할 사람이! 하지만 그냥 내려왔습니다. 당신이나 그렇게 사쇼. 나는 뭐도 하고싶고 뭐도 하고싶고.. 이것 저것 다 내가 직접 해보고싶소. 무튼, 그래서 다시 학교를 가고 결혼까지는 했는데. 그 다음이 영.. -_- 아, 이 말은 저런 야구만 하고 살기는 힘들 것같다는 그런 야구입니다. "질바닥서 까부는 것덜두 다 계통이 있는 법"이라잖어요. -_-;;

  4. 무한 2009/03/13 11:44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어익후.. 포스팅도 이제는 확인도장 받고 올려야 하나요.

    이런 포스팅만 올리기로 하셨다면,
    '하민혁의 서점통신' 으로 바꿔주시길 바랍니다.

    하민혁님은 블로그계의 '왕비호' 십니다.
    쫄지 마세요.

    안티팬이 벌써 수만명...

    • 하민혁 2009/03/13 12:06  편집/삭제  댓글 주소

      몇몇 분이 야구 하는 거 듣다가 솔직히 저도 살짝 놀랐습니다. 내가 그렇게 비호감이었나 싶어서 말이지요. 무튼, 그거 좋은 거 아니잖아요. 나이 들어서 추해뵈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함 바꿔보려고 합니다. 안티팬 없는 하민혁의 민주통신으로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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