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큐를 봤던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른다. 아마 박정희가 죽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류의 프로그램이 성시를 이룰 때가 아니었나싶다. 그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 이루어진 포로교환 과정에서 남과 북 어느 쪽도 아닌 제3국행을 선택한 이들의 행적을 좇는 다큐 프로그램이었다.

수 십년이 흘렀지만 그때 받은 인상은 지금까지도 내 의식 한 켠에 깊이 박혀 있다.1

제3국행을 선택해야 했던 그들의 상황과 그 선택의 결과로 걷게 된 그들의 삶은 이후의 내 삶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개인적인 정체성의 문제에 빠져 번민을 거듭하던 내게 그 프로그램은 내가 속해 있는 사회와 국가의 문제를 던져주었다.

어제, 늦은 밤에 야식을 먹으러 나갔다가 KBS에서 방영한 <디어 평양>을 봤다.


디어 평양


영화의 초반부는 보질 못 했다. 내가 본 것은 주인공의 오빠들이 '귀국선'을 타는 장면부터였다. 영화를 보고나서 찾아보니, 전반부에서는 제주에서 태어난 주인공의 아버지가 일본으로 건너와 어머니와 결혼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전의 한일, 남북 관계에 대한 설명이 진행되는 모양이다.

무튼, 그렇게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그것도 중간부터 보게 된 영화를 끝까지 봤다. 흔하지 않은 일이다. 영화가 도대체 영화같지가 않아서였다. 더 정확히는 영화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도무지 남의 일같지가 않아서였다.

평양. 그 이름만으로도 묘한 울림을 주는, 서울이나 부산, 광주와는 전혀 다른 울림을 주는 단어다. 엄연히 실재하는, 그것도 우리의 바로 지근 거리에 있는 지명이면서도 먼 이국의 뉴욕이나 파리 등보다 더 생경하게 느껴지는, 마치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나 한 것처럼 다가오는 그런 이름.

그런데 이런 평양을 감독은 '디어 평양'이라는 이름으로, 더 접근하기 힘든 공간으로 만들어버린다.

 
디어 평양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평양은 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세기말 세계를 휩쓸던 제국주의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일본이 그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동면하는 개구리마냥 깊은 잠에 빠져 지내던 조선 왕정을 집어삼키고 이후 36년간을 무단 통치하던 시대에도 평양은 여전히 우리가 함께 숨쉬며 살아가는 실재하는 공간이었다.

그곳은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의 몸짓이 살아 있는 곳이었다. 그랬던 곳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동서 냉전 체제의 희생물이 되고 그 결과 전혀 다른 세상, 범접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반 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고, 언젠가부터 그게 더 자연스로운 일이 되고 말았다.

<디어 평양>은 우리가 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 사실이 실은 전혀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있는 우리와는 또다른 지점에서 우리로서는 볼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삶을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디어 평양>, 실재하는 혹은 실재하지 않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


디어 평양


영화는 조총련 간부인 아버지와 북한으로 '귀국'한 3명의 오빠를 둔 재일동포 2세 여성 감독이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10년에 걸쳐 카메라에 담은 다큐먼터리다. 영화는 이들 재일동포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남북 분단이 주는 아픔과 재일동포의 삶, 그리고 이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는 '평양'이라는 이름으로 표상되는 북한의 체제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부모와 전화 통화조차도 할 수 없고, 부모 형제와 '면회'를 해야 하는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를 묻고 있다. 사람을 꼼짝없이 옭아매어 자발적인 충성이 이루어지는, 사람을 그 아래 종속시키는 이데올로기의 정체에 대한 물음이고, 엊그제 백분토론에서 나왔던 바로 그 북한의 문제다.

영화를 보면서 자꾸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오버랩되었던 건 이 때문이다.  영화 내내 조총련 간부로서의 '충성심'과 '주체의식'을 견고하게 유지하던 아버지지만, 기력이 쇠해진 후반부 어딘가에서 세 아들을 '귀국선'에 태워보낸 데 대한 회한을 내비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시는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지. 사회주의 열기가 앙양해 있을 때였고, 금세 뭔가를 이루어내리라고들 믿었어. 그땐 그랬어.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지만.."


디어 평양


왕정에서 곧장 일본 제국주의로 넘어간 민중들에게 있어 평등 이념의 사회주의는 단순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신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직후 사회주의가 전 조선 사회를 휩쓴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신드롬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조총련 활동에 매진하고 흔히 북송선이라 부르는 '귀국선'에 자신의 아들들을 기꺼이 태워 북으로 보냈던 것도 바로 이같은 신드롬이 그 동인이었던 셈이다.


평양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혹은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 다시 사회주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바람을 넘어 신드롬의 징후까지가 읽히고 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해방직후의 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청산한 듯 보이지만, 그러나 아니다. 사회주의는 청산된 게 아니다. 종전 직후 이어진 냉전체제가 잠시 억눌러둔 상태일 뿐, 우리 사회의 저변에는 아직도 사회주의에 대한 민중의 뜨거운 욕구가 숨겨져 있다. 우리 힘으로 사회주의를 극복한 게 아니어서다.

동서냉전 체제가 종말을 고하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냉전 의식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한국 전쟁을 통해 공고화되어 있던 반공 이데올로기 또한 냉천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거의 형해화하고 있다. 억눌려 있던 예의 저 사회주의에 대한 요구가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디어 평양


북한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읺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왜냐면 평양은, 나아가 북한은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 아니라 생생하게 현존하는 공간으로 지금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기 때문이고, 이제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직접 맞부닥쳐 극복해야 하는 문제인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바람직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엄존하는 현실을 외면해서 안 된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북한과의 문제는 '친북-반북' 혹은 '종북-반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접근해야 한다는, 엊그제 백분토론에서 노회찬이 말한 바로 그 이야기다. 특정 이해관계에 따라 고정, 왜곡된 이제까지의 시각을 접고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자는 것이고, 

우리 힘으로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제대로 고하자는 얘기다. 이제 그럴 때도 그럴 때가 되었다.

 


<덧붙이는글> 글을 쓴 나도 이 글이 이리저리 폴짝폴짝 뒤면서 심히 비약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니 그딴 거는 보지 말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만 행간에서 찾아읽기를 바란다. 그게 귀찮은 이라면 걍~ 조용히 패스하시고.
선지자, 웬만하면 이런 얘기 안 한다. 선지자께서 요즘 부대끼는 일이 워낙 많아 덧붙이는 말이다.
 
  1. 경험칙에 따르자면, 이것 하나만 봐도 PD수첩 아해들의 거짓 화면은 용서 받지 못할 짓이다. 이 얘기 하면 또 언론자유가 어쩌고 하는 이상한 분들 있을 것같아 미리 말해두지만, 광우병 소가 아닌데도 단지 자신의 얄팍한 뇌로 추정컨대는 그렇다며 나자빠지는 소를 광우병 소라고 수 십 수 백 차례나 화면에 내보내고 거기에 역시 자신들의 얄팍한 뇌에 의지하여 아레사 빈슨의 죽음을 또 인간광우병으로 몰아 그 앞에서 흐느껴 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반복해 보여주었던 건, 그래서 지금도 광우병 하면 사람들이 그 장면을 머리에 떠올리도록 만든 건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PD수첩을 만들고 공중파에 쏘아댄 저들의 행태에 비판적이다. 무엇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새빨간 거짓 방송을 하고서도 거기에 대한 조사를 언론탄압이라며 맞서 설레발을 치는 저들의 비열한 작태다. 천 만 번을 다시 생각한다 해도 피디수첩의 저 방송은, 그리고 이후에 저 윤똑똑이들이 보인 쌩쑈는 비난과 경멸을 받아 마땅하다. 이같은 행위가 허용되는 순간 방송의 공정성과 신뢰를 부르대는 어떤 주장도 이미 그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사법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이들의 행위는 적어도 심층취재 보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죄다. 그것도 대단히 크고 심각한.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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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게타카 2009/05/09 12:2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오늘날 우리사회의 진보진영은 (한나라당+조중동+뉴라이트+이명박) 셋트를 주적으로 정해놓고 그에 대한 적대적 저항만을 일삼는다.즉, 그들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기에 애써 계속 현실만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면 자꾸만 생산적 논의의 흐름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만 남게 된다.
    진보라 이름을 내걸고 위의 셋트에 반항을 하다보면 언젠가 자신들이 집권할 날도 올것이라 믿어,그때 과거 저항의 경력을 내세워 권력을 얻고 싶어하는 그저 현실에선 어떻게 능력도,뭐도 안되니 이런식으로라도 권력을 얻고자 하는 무리들일 뿐이다.

    여기서 진정으로 능력도 갖추고 도덕성도 갖춘 진보주의자들은 묻힌채 셋트 대 진보의 대결에만 골몰해 대안이나 새로운 정책등은 갖추지도 못한 허접한 가짜 진보주의자들이 국민들의 눈을 홀린다.

    결국 이들이 집권을 해도 실패할것은 매한가지다.왜? 능력도 없었고,공부도 하지 않았지만 권력은 원했기 때문에 권력의 힘을 다시 셋트들을 몰아내는데 몰두할 것이기에...

    진보를 원한다면 조용히 능력을 갖춘채 준비한다면 저절로 국민들이 인정할 수 밖에 없고, 또 능력이 있기에 진보가 성공할 수 밖에 없다.

    뭐, 일제식민지 시절 무력에 의한 독립투쟁을 앞세웠던 무장독립 세력과 계몽을 통해 우선 힘을 길러야 한다는 애국계몽 세력의 구도와 비슷한 모습이다.

    이것이 쥔장님이 생각하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 맞는지요?

    마지막으로 조중동을 그렇게 무시하고 까대면서 왜 조중동을 능가하는 신문을 만들지 못하는가?에 대한 쥔장님의 주장에 대해서는 선점효과를 생각해본다면 선뜻 동의하기 힘들더군요...

    • 하민혁 2009/05/09 15:45  편집/삭제  댓글 주소

      거의 같은 이야기입니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 살짝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 것같습니다. 예컨대 '주적을 정하고 적대적 저항만을 일삼는다'고 하셨는데,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저항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그 저항이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한 저항이 아니라 '적대적 공생' 구도를 고착화하여 거기에 기생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그 점을 비난하고 있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제가 보기에 이들은 집권이나 뭐 이런 데는 크게 관심이 없는 친구들입니다. 능력이 없는 데다 시대착오적인 이상한 공부만 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들은 도무지 외연을 넓히고자 하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언듯 보면 내적인 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그것은 알량한 자기 밥그릇 지키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생질로 먹고 사는 주제에 그걸 기득권이랍시고 움켜쥐고 있는 겁니다.

      "진보를 원한다면 조용히 능력을 갖춘채 준비한다면 저절로 국민들이 인정할 수 밖에 없고, 또 능력이 있기에 진보가 성공할 수 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세상에 어떤 것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애써 싸워서 이길 때만 성취할 수 있지요. 그런 점에서 능력을 기르는 준비와 싸워나가는 실천은 시차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일제 시대의 사례를 들어주셨는데, 여기서도 무장 투쟁과 계몽 운동은 함께 가야 하는 것이지 별개화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조중동의 문제는, 선점효과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부터 자주 하는 말이지만, 대통령까지 나서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그걸 능가하는 신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존 언론의 선점효과가 아무리 크다 해도 설마 하니 그 일이 정권을 창출하는 것보다 더 난망한 일은 아니겠기에 하는 얘기입니다. 나는 조중동 문제의 본질은 조중동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중동 프레임을 만들어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 자들의 문제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미국을, 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만들어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한마디로 조중동 프레임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인데, 예컨대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조중동이 그렇게 우리 사회를 죽이는 독극물이고 절대악이라면 두 번의 정권 창출은 어떻게 가능했다는 것인지 되물어야 합니다. 저들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그건 불가능했어야 할 일이어서입니다. 러프하게 말하자면, 조중동은 함께 가거나 이용해야 하는 대상이지 악으로 규정하여 폐기해야 할 대상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어지럽게 토막나 있는 이야기들을 이렇듯 칼같이 정리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꾸벅~

    • 하민혁 2009/05/09 18:39  편집/삭제  댓글 주소

      방금 재밌는 글을 하나 본 터라 부분 인용하고 원문을 링크합니다. 옮긴 부분은 김지하의 인터뷰 기사 가운데 옛 민주화 동지들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 ··· 02646414

      "감옥에 간 나를 철두철미한 마르크스ㆍ레닌주의자, 불굴의 혁명투사로 만들어 그 비극적 명성으로 저희들 탈권 기획을 성사시키려 했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처형당하도록 만들어 국제적인 선전전에 이용해 먹으려고 끊임없이 기도했고, 저희 말을 안 듣자 배신자, 변절자로 몰아 모략중상을 상시화했다"('촛불, 횃불, 숯불' 258쪽)

  4. 나인테일 2009/05/09 12:49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사회주의가 꼭 극복의 대상인 것은 아니지요. 견제없는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 같은 괴물로 변해버릴지도 모르지만 견제 없는 자본주의도 빅토리아 시대 시즌2가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우파의 역할이란건 사회주의의 배제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사회주의가 진짜로 쫄딱 망해버렸다간 우파도 좋을거 하나도 없습니다.

    양 쪽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서로를 미워해도 결국은 같이 가야지 서로에게 발전이 있는거라고 봅니다. 실제로 좌우가 한 울타리 안에서 죽어라 싸워대는 모 블로그 사이트의 경우엔 태터 계열이나 아고라같이 일방통행인 곳들보다야 토론의 수준이 훨씬 높은걸 볼 수가 있지요. 올블의 몇몇 인간들처럼 얼토당토 않은 싸구려 뻘글 싸면 인정사정 없이 까인다는걸 아니까요.

    서로 싸워야 서로 발전도 있다는 시장의 법칙은 이데올로기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 하민혁 2009/05/09 16:01  편집/삭제  댓글 주소

      어~? 사회주의가 꼭 극복의 대상이라고 얘기한 적 없는데요. ^^

      "사회주의가 바람직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엄존하는 현실을 외면해서 안 된다는 뜻이다." 혹시 이 부분 때문에 그렇게 본 거라면 그 역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내칠 일만은 아니다'는 걸로 읽어도 무방하겠다는 뜻입니다.

      '스탈린주의', '빅토리아 시대 시즌2' 등의 얘기는 제가 백그라운드가 약해 개념 정리가 잘 안 되는 터라 멘트를 략하겠습니다. 게다가 "우파의 역할이란건 사회주의의 배제이겠다"는 말씀이나 "사회주의가 진짜로 쫄딱 망해버렸다간 우파도 좋을거 하나도 없다"는 얘기 등도 실은 금시초문이어서 많이 당혹스럽니다.

      무튼, 이같은 전제를 깔고 굳이 제 의견을 말씀드린다면 우파의 역할을 그렇게 정의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고, 사회주의가 쫄딱 망한다고 해서 그것이 어떻게 우파에게 좋을 게 없다는 것인지는 선듯 와닿지가 않습니다. 물론 그 취지는 이어지는 얘기를 통해 어렴풋이 읽을 수 있기는 합니다.

      방금 전에 올린 위의 답글서도 한 얘기지만, 서로 싸워야 발전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문제는 그냥 싸우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개싸움도 싸움인 건 맞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싸우되, 잘 싸워야 하겠습니다.

      <덧> 댓글 삭제하지 마세요. 전에 명문 답글 하나 올렸다가 날려먹었습니다. ^^

  5. 하게타카 2009/05/09 19:05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쥔장님이 8개월뒤 하시려는 일은 '신당 창당'인것으로 생각되옵니다.그냥 추측입니다.

    진보진영의 구체적 체제와 대응논리,정책 구조를 갖추기 앞서 어떻게 하면 과연 노무현때 만큼의 흥행을 국민들로 부터 이끌어 낼 것인가? 에 대한 고민에 힘을 모아야 할것으로 보입니다.

    도대체 국민들이 관심조차 없는데, 아무리 옳고 좋은 말들을 뱉어내는게 결국 정치화 하지 못한체 흩날리게 된다.

    진보진영엔 도덕성도 뭐도 다 중요하겠지만 1빠로 젤 중요한건 '흥행 배우'가 아닐지...

    초특급 엘리트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를테면 외모까지도 좀 출중하셔야...ㅋㅋ

    • 하민혁 2009/05/10 00:24  편집/삭제  댓글 주소

      맞습니다. 일빠로 중요한 건 흥행 배우입니다. 근데 사실 한번만 잘 생각해보면 흥행 배우는 이미 있습니다. 초특급 엘리트가 아니어도 말이지요. 뭐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초특급 엘리트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님의 말씀마따나 지금 국민 일반에 필요한 건 희번득한 논리가 아닙니다. 게다가 도덕성이라는 게 원래 돈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도덕성 강조하는 가난한 친구들 말을 저는 잘 안 믿습니다. 당근 경험칙에 따라서입니다.

      8개월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는 그때 가서 말씀드리는 게 합당할 듯싶습니다. 지금 그걸 얘기하고 나면 이제 더 이상 선지자가 필요없어지니요. 그리고 이건 그냥 여담인데, 선지자와 구세주를 혼동하는 분들이 더러 있더라구요. 하민혁은 어디까지나 선지자일 뿐입니다.

      아, 한 가지가 특이한 선지자이기는 합니다. 저는 원래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체질이어서 무모하다싶은 일도 잘 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더불어 뭔가 도모하는 걸 좋아합니다. 8개월 뒤에도 이건 아마 별로 변하지 않을 것같습니다.

      <덧> 이 블로그 쥔장이 초특급 엘리트는 확실히 아니지만, 외모는 한 출중합니다. ^^

    • 테츠 2009/05/10 00:50  편집/삭제  댓글 주소

      주인장이 생각하는 초특급 흥행배우는 설마 박찬종?...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는.

    • 하민혁 2009/05/10 12:23  편집/삭제  댓글 주소

      테츠/ 에혀~ 설마요.. 테츠님도 참 엉뚱한 구석이 있으시다는.. ^^

  6. 노무현짱 2009/05/10 01:17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하민혁님이 말한 북한이 생생하게 현존하는 공간이라는데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제 사회주의를 논할 때가 되었다거나 이데올로기의 종언 고할 때가 되었다는 글에는 공감할 수 없습니다
    하민혁님이 말한 것은 한반도 북쪽을 불법 정렴하여 3대째 이어지고 있는 세습왕조가 망하고 한반도가 통일 된 다음에 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이 망하면 친북이니 반북이니 하는 한국사회의 갈등과 반목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며 이데올로기도 사라집니다
    한반도에서 두 이념이 서로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죽이느냐 죽느냐 하는 판국에 이념의 무장 해제는 대한민국을 자칫 위태롭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라고 보수가 좋아서 지지하는 줄 압니까?
    제가 세습왕조 체제 밑에서 배 쫄쫄 굶으며 개 돼지 보다 못한 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먹는냐 먹히느냐하는 판에 팔자 좋은 소리 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하민혁 2009/05/10 12:32  편집/삭제  댓글 주소

      이념의 무장해제를 말하는 게 아니구요. 이념 논쟁을 제대로 함 해보자는 거지요. 그게 필요하다는 얘기구요. 그건 피해거려 한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게 아니어서입니다.

      북한이 망하는경우를 말씀하셨는데요. 북한이 망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그 경우는 아마 더 할 겁니다. 한번은 우리 힘으로 극복을 해야 할 일입니다. 북한이 망한다는 가정을 하셨으니 하는 얘기지만,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그때 가서 이는 이념 논쟁은 그야말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또 한번의 내전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북한이 망한다고 해서 한국 사회의 갈등과 반목이 저절로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7. sunlight 2009/05/10 03:5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하민혁님.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신데, 우리가 꼭 짚어야 할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지금의 북한 정권이 처음부터 세습 정권으로 출발한 게 아니라는 거지요.
    남한에서 활약했던 박헌영을 부주석으로 기용하면서 초창기 투사들을 대우했을 정도로
    공산주의 사상이 원칙으로 작용했습니다.
    문제는 그 공산주의(사회주의) 사상이 과연 무엇인가 입니다. 19세기의 유럽 사상을 잘 정리한 마르크스는 학자로서는 아직도 영향을 크게 떨치고 있습니다.(공부를 조금만 더 하다보면 그게 마르크스의 독창적인 사상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사람, 즉 선배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일성은 중국의 마오처럼 공산주의자가 분명합니다. (이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원래 이념이란 것이 그런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제가 하고자하는 말은, 공산주의 이념 자체가 큰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뭐냐? '나를 믿어라'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세계사를 보면 마그나 카르타 이후 '너를 믿어줄 놈은 전혀 없다'는 것이지요.
    솔직히 2009년의 대한민국에 과연 '좌파'는 어떤 사람들인가? 이런 질문을 제기했을때 과연 누가 대답할 수 있을 까요? 아무도 대답 못 합니다. 민노당은 강령에는 거창한 얘기들을 써놨지만, 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미국의 민주당 수준입니다.(미국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반공주의 국가인데...)
    그래서 좌파의 정체성을 따져보면 경제성장론자인지, 내수진작주의자인지는 금방 드러나지만, 그게 조금이라도 경제를 위축하는 것이다라고 하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며 펄펄 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좌파는 구멍가게 아저씨부터 대기업 컨설턴트까지 다양합니다. (사실은 좌파가 아니고 자유주의자들입니다.)
    얘기가 너무 길어져서 한 타임 늦춰야 되겠군요. 좀 있다 다시 오겠습니다.

    • 하민혁 2009/05/10 14:04  편집/삭제  댓글 주소

      제가 이런 얘기를 별로 안 좋아해서요. 아니, 이건 정확한 표현은 아니고.. 안 좋아한다기보다는 이런 얘기 하다보면 좀 많이 피곤해져서.. 그래서 결국 잘 안 하게 된다는 뜻입니디. 이게 결국은 답이 없는 얘기거든요. 이런 거는 그냥 그런 얘기로 밥벌이하는 친구들 몫이 아닌가싶어요. 저같은 이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책은 1,2차 저작물을 두루 읽은 편인데, 자본론만은 다 읽지를 못 했습니다. 스터디까지도 몇 번 하고 했지만 결국은 포기를 했어요. 도대체 일생에 도움이 안 될 성부른 뻘소리들을 넘 해대서.. 피곤하더라구요. 자본론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이건 뭐 별 재미가 없었구요), 그걸 읽는 친구들이 그렇더라는 얘기입니다.

      무튼, 공산주의의 결함이 "나를 믿어라"는 논리에 있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저도 언젠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거든요. 공산주의(사회주의까지를 포함해서)는 '철인통치론'의 다른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데요. 민중과 평등을 중심에 두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논리는 결국 민중과 평등 위에 군림하는(이론적으로는 서포트하는 거지만) 엘리트주의라는 거였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좌파 일반이 자주 계몽의 성격을 띠는 것도 아마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거에요.

      북한이 세습정권으로 출발한 게 아니라는 건 당연한 얘기입니다. 다만, 여러 측면들, 예컨대 왕정과 식민통치 이후 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충분한 학습효과가 있기 전에 바로 맑스주의(철인통치론의 다른 버전인)를 수용하면서 그것이 결국 수령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결과라고 봅니다. 이같은 사례는 대단히 많습니다. 사무엘 헌팅톤 같은 이는 이를 러프하긴 하지만 일정 정도는 이론적인 작업으로 쎄워두고 있기도 하지요. 박정희의 독재가 가능했던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나를 믿어라"는 논리로 말이지요. ^^

  8. sunlight 2009/05/10 04:13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다시, 이야기를 해봅시다.
    미국에서도 마르크스적인 발상을 가진 책 들이 등장합니다. 당연하지요. 현실은 항상 처참합니다. 인간적인 휴머니즘으로 보완을 해야 마땅합니다.
    마르크스의 가장 큰 치명점은 "누가 그렇게 해 주느냐?"입니다. 만약 운좋게 내가 그 일을 맡았으면 우리 가족은 환호를 지를 것입니다. 이 원칙을 소비에트, 중국, 아니면 좀 깨어난 스칸디나반도 그 어떤 곳에서도 제1원칙으로 작용했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마르크시즘은 기존의 제도를 없애고 '나 개인을 믿으라'입니다.
    당연히 광신도 교주를 떠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 그런데 그런 형편 없는 이념이 어떻게 아직도 유럽에서 수많은 석학들에게 회자되고 있느냐?
    그건 지식의 수입상들이 자기 편의에 따라 이용해 먹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기든스는 현재 마르크스의 이론이 옳다고 해서 적용되는 사회학 이론은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말하자면 상징적인 균형 이론 정도라는 거죠.
    (하버마스부터 시작해서 논의의 대상은 무지무지 많지만, 그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다시 막혔습니다. )

    • 하민혁 2009/05/10 14:15  편집/삭제  댓글 주소

      이 댓글의 요지는 "마르크스의 가장 큰 치명점은 '누가 그렇게 해 주느냐?'입니다"는 대목에 있는 것같습니다. 동의합니다. 이에 대한 답글은 바로 위에 간단히 언급한 "맑스주의는 철인통치론의 다른 버전이다"는 얘기로 대신합니다. 혹시 제가 전혀 다른 맥락을 짚고 있는 거라면 말씀해주세요. 다시 답글을 드리겠습니다. 존 휴일~ : )

  9. 머니야 2009/05/10 13:12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잘봤어요..영화를 직접한번 봐야겠네요~ 즐거운 휴일 잘 보내시구요!

    • 하민혁 2009/05/10 14:20  편집/삭제  댓글 주소

      저도 기회가 닿으면 다음에 다시 함 보려고 합니다. 재밌더라구요. 제가 원래 만들어진 영화보다는 이런 다큐 쪽을 더 좋아하거든요. 요즘은 다큐도 다큐 같잖은 다큐가 넘 난무해서 살짝 염증이 나긴 하지만요. ^^

      <덧> 아.. 배가 고프네요.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으려고 했더니.. 며칠 전 먹은 게 마지막이었다는.. -_- 사러가기도 귀찮고.. 쩝~ 머니야님은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 )

  10. doccho 2009/07/03 17:44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안녕하세요. 홍보로 비춰지기보다 좋은 영화에 대한 감상 번개 정도로 가볍게 봐 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제가 인턴으로 있는 곳에서 디어 평양 '단관'을 합니다. 한겨레 영화 담당 이재성 기자가 함께 하시는데 같이 영화보고 얘기 나누면 좋을 듯 합니다.

    http://hrights.or.kr/technote7/board.ph ··· no%3D520

    덧.
    하민혁 님 블로그 RSS 구독자입니다. http://doccho.net로 제 얘기를 풀어보고 있고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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