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처음 나왔을 당시, 학우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적 관점으로, 헤겔이 절대정신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듯이 조정래는 태백산맥으로 자신이 가진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노라고, 그러니 함 읽어보셔야 할 거라고.[footnote]생뚱맞게 이게 머언 소린가 하는 분이 있을 거같아 잠깐 언급하자면, 그 학우는 헤겔을 공부하고 있었고 쥔장은 비트겐슈타인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스터디에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고 있던 참이었고. 또한 당시는 너나 할 것 없이 '세계관'이라는 말을 거의 일상으로 떠들던 때였다. 그래서 나온 얘기다.[/footnote]

그러나 나는 그때 소설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주제에 그냥 코웃음만 쳤더랬다. 세계관이라고? 기껏 조정래의 소설이?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후 소설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팔려 나갔다. 이제 태백산맥은 어디서나 화제가 되었고 또한 가는 곳 어디에서나 눈에 띄었다. 결국 어느 학우의 책상에 있던 책을 집어왔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1권을 다 읽지 못한 채 책읽기를 접었다.

답답했다. 소설의 전개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작중인물들의 성격묘사도 그러했다. 특히나 작가의 도도한 폼이 영 기분(?)에 거슬렸다.[footnote]물론 안다. 그건 모두 내가 한갓된 편협함에 갖혀 있어서였다.[/footnote]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그때도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게 아니었다. 그냥 밴댕이 소갈머리로, 삐딱하게, 그 표현과 풍(뻥)에 있어선 김주영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꽤 사실적인 저 배맞춤 장면만 뒤적여 몇 장 음미(?)하다 만 터였다. 뭐랄까, 지금 한창 설왕설래 중인 영화 '박쥐'의 송강호 고추 얘기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뭐 대강 그런 정도였다.

무튼,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어느 후배의 열렬한 찬송에 힘입어, 보다는 입만 열면 외어대는 그 찬송을 어떻게든 좀 누구러뜨려볼 요량으로, 그런 불순한 의도로 소설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는 사흘 밤 사흘 낮을 소설 태백산맥과 함께 살았다. 소설은 학우나 후배의 전언대로 과연 나를 압도하였다. 무엇보다 그 방대한 스케일에서 내 기를 죽여버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부까지 그렇게 거침없이 나를 휘몰아가던 소설은 그러나 3부를 들어서면서 사뭇 현학성을 띠기 시작했다. 얘기에 긴장감도 떨어지고 우선 읽는 재미가 사라져버렸다. [footnote]하고 싶은 얘기가 넘 많은 때문이었으리라. [/footnote] 암튼, 태백산맥은 그래서 조금은 허탈하게 그 읽기를 끝냈던 기억이다.  

소설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생략한다. 소설 일반에 대한 소개는 위키백과의 《태백산맥》편을 참조하시면 될 듯싶고, 따로 소설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소설 태백산맥 줄거리를 읽으시면 되겠다. 인터넷서점이나 조정래 작가의 개인 홈페이지에도 소설에 대한 설명은 잘 정리되어 있다.
 
 
[이하 뱀발]


조정래의 태백산맥


나는 지금도 '시가 말하도록 해야지 시인이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어느 시론에 동의한다. 그리고 이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도대체 소설가가 말을 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이미 소설이 아닌 에세이가 되고 마는 것이라고 여기는 때문이다.

작가 이문열은 어딘가에서 소설 '사람의 아들'에 대해, 자신은 중편이었을 때의 '사람의 아들'보다 장편으로 개작한 후의 '사람의 아들'에 더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의 아들'을 중편으로 읽었을 때의 그 재미를 개작된 장편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었다.

이는 최근에 읽은 그의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도 이미 한 차례 밝힌 바가 있는 얘기다. 단적으로 작가가 너무 많은 것을 말하려 할 때, 특히 주변의 몰이해로 인한 강박적 경향성에 빠져 있을 때 이같은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는 생각이다.

소설 태백산맥의 후반부에서 느낀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문열의 개작된 장편이 사변을 늘어놓고 있는 양이나 태백산맥에서 조정래가 직접 소설의 해설가로 나서는 양은 같은 맥락에 있다. 소설은 일차적으로 재미있어야(? 혹은 소설다워야?) 한다는 내 관점에서 볼 때, 작가의 이같은 노골적인 개입은 소설이 갖는 김장감을 잃게 할 뿐이다.

에니웨이,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은 양과 질 모두에서 하도 엄청난 얘기를 담고 있다. 이건 역설적으로 일반적인 썰을 푸는 건 이 정도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변명이다. ^^ 아, 어째 얘기가 마무리가 안 된다. 그만 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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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unlight 2009/05/11 03:03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하민혁님. 이건 내 분야군요.

    요즘 계속 술이라, 좀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데, .... 논리적으로 자신 없는 상태입니다.

    이문열은 사실, <영웅시대>에서 소설가로서의 생명이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왜냐? 바로 하민혁님이 지적한 그것, 즉 <태백산맥>의 제3부와 같은 주관적인 수사에 빠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라는 것이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끝까지 소설의 본분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결국 끝에 가서는 일기 형식을 빌어서 자기 주장을 비소설적인 언어로 주입하려 했으니까요.

    문제는 <태백산맥>이 과연 어떤 소설일까 하는 점입니다. 우선 그보다 먼저 이병주의 <지리산>이 나왔고 김원일의 <불의 제전>이 나왔으며, 일본인 작가의 <태백산맥>이 나왔고 김산의 <아리랑>도 나왔고 빨치산 체험기를 영화화한 <빨치산>이 나오고 난 후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진짜 문학평론한다는 개새끼들 다 때려 죽여야 합니다. 저는 먹고사는 것이 바빠서 완전히 손떼었다고 선언했는데, 그동안 이런 얘길 한 작자들이 한 놈도 없다는 것을 보면, 평론가란 정치인보다 더 심한 협잡군입니다.)

    참고로 다음 사이트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http://cafe.daum.net/issue21/3Fdk/3083?docid=rUoh|3Fdk|3083|20080809231232&q=%B9%FA%B1%B3%C0%C7+%C1%F8%BD%C7&srchid=CCBrUoh|3Fdk|3083|20080809231232&re=1

    차라리 젊은 용기가 이 소설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태백산맥> 의 끈적끈적한 면이 어디서 왔느냐? 그것은 김원일의 몫입니다. 시대가 변해서 말은 못하고 있지만, 김원일은 무지무지 억울할 것입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때로는 현실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소설가의 특권이지요. 그래서 소설가들은 옛날부터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은 적도 많습니다. 문제는 그 왜곡이 인간의 보편성과 맥락이 닿아 있느냐 하는 것인데, 제가 보기에는 조정래는 그런 소설가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지방 대학의 학생들이 의심을 품을 정도로 개연성을 충족하지 못한 작가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병주 소설을 읽다보면 그런 부분이 살갗 벆여지듯 조금씩 드러나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논의의 중앙으로 오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저의 안목이 좁은 탓일수 있고 제가 별 볼일 없는 놈일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대중적인 요구가 있다고 봅니다.

    80년대 출판계를 보면 대충 감이 잡힙니다. 사회과학 도서들이 연일 나오고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시점입니다.

    운동권 내부에서는 마르크시즘이 지배했지만, 밖으로는 표출할 수 없었던 시절, 대중에게 어필하는 방식을 찾은 것, 저는 그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태백산맥>을 추켜세우는 지식인들이 있다면 보나마나 뻔한 사람들이지요.

    • 하민혁 2009/05/11 05:33  편집/삭제  댓글 주소

      선라이트님이 댓글로 과분한 옥고를 남겨주셨네요. 제가 밤새 프로그램 소스만 들여다봤더니 머리가 빙글빙글합니다. 답글은 잠깐 눈 좀 붙이고 나서 드리겠습니다.

      <덧> 흑, 저도 요즘 술 고픕니다. 비님도 오시고.. 하니 더욱이요. ^^

    • 무한 2009/05/11 11:41  편집/삭제  댓글 주소

      선라이트님 블로그 있으면 한 번 보고 싶네요.
      글에 홀딱 반했습니다 ㅋ

      <덧> 선지자님은 질투하지 마세요.

    • 하민혁 2009/05/11 12:55  편집/삭제  댓글 주소

      무한/ 아.. 여기서 이러시믄 아니 되옵니다. ^^

      <덧> "오셀로는 결코 질투심이 강한 사내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지나치게 사람을 잘 믿었던 것이다." 뿌쉬킨은 이렇게 단정했다. 그리고 이 말 하나만으로도 이 대시인의 통찰력은 입증되고도 남음이 있다.
      - 도스토옙프스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 하민혁 2009/05/12 02:59  편집/삭제  댓글 주소

      "지방 대학의 학생들이 의심을 품을 정도로 개연성을 충족하지 못한 작가"임을 확신한다고 하셨는데요. 링크한 곳을 읽어봐도 어떤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인지는 나와 있지를 않네요. 언젠가 저도 그런 얘기를 듣보기는 한 거같지만, 무튼 링크한 곳에서는 그 얘기가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혹시 링크가 잘못된 거 아닌지 확인을 부탁합니다.

      다른 부분도 글이 막 튀고 있습니다. ^^ 갑자기 문학평론하는 가이쉐이들을 다 쌔리지기야 한다고 하시는데, 왜 그래야 한다는 건지는 또 안 나와 있습니다. 아, 저도 이병주의 남부군은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리산은 읽었는지 아닌지 기억에 없네요. 아리랑도 물론 읽었구요. 불의 제전은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좀 질리더라구요. 그래서 읽다가 말았습니다.

      다른 부분은 뭐 대개 공감합니다. 생각할 수 있는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꾸벅~

  4. 빈나무 2009/05/11 18:29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오래전에 며칠밤을 새면서 아리랑은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아직 태백산맥은 기회가 없었습니다.
    사회주의에 치우친 점을 제외하고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조정래 작가를 아리랑 후반부의 무대인 이곳 심양에 초청하고 싶은데
    어떻게해야 연락을 취할 수 있을런지.... ^^
    (가을축제때 선양교민과 조선족동포들을 대상으로 문학강연회를 열 계획이 있거든요.)

    • 하민혁 2009/05/12 03:03  편집/삭제  댓글 주소

      저는 아리랑을 아직 못 읽었습니다. 하나 읽었으면 됐지 뭐.. 하는 생각이 아마 강해서일 겁니다. 사실 시간이 많이 아깝잖어요. 읽어야 할 책이 워낙 많아야 말이지요. 하지만, 시간이 나면 함 읽어볼 책 가운데 하나이긴 합니다. ^^

      <덧> 조정래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연락을 취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싶은데요. 연세가 좀 있으시긴 하지만, 그래도 심양이라면 조건만 어느 정도 맞다면 응하시지 않을까싶습니다.
      <덧2> 아, 심양에 계시는군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5. sunlight 2009/05/12 03:24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하민혁님 큰 실수를 했군요.
    술을 한 잔 해서 그리됐습니다.(찾아 보니 그 사이트는 없어졌는지, 도무지 못찾겠군요.)
    대신 그 대학생들이 만든 비디오가 있군요.
    한번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http://blog.daum.net/kazet/7851121

    세명대 대학생 안성현씨가 만든 자료입니다.

    아, 술을 먹으면 항상 실수한다는 걸 알면서 매 번 까먹고 있습니다.

    그럼...

    • 하민혁 2009/05/12 03:59  편집/삭제  댓글 주소

      링크해주신 영상과 글 잘 봤습니다. 지극히 상식선에 있는 얘기가 아닌가싶습니다. 실제로 여순사건에 대한 저 정도의 얘기는 거의 일상으로 들은 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중학교를 그쪽서 나왔거든요. 아주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은 얘기들입니다.

      제가 보는 태백산맥의 경우는 그러니까 어느 한 쪽에 치우쳐 있던 내용을 역시 다른 한쪽으로 살짝 치우친 관점으로 살핀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이 수십 년 전처럼 이념이 흔들리는 경우 체제의 유지 자체가 힘들 정도로 남북이 극한 대립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니니만큼 이 정도는 얘기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구요.

  6. sunlight 2009/05/12 03:53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비디오 자료를 보시면 알겠지만, 태백산맥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 지향성 소설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시기에 거창 학살사건과 함양 지구의 청야 작전 사건이 일어납니다. 청야 작전 그건 뭐냐? 빨치산이 둥지를 틀지 못하게 동네를 초토화하는 거지요. 이 사건으로 신성모 국방장관이 물러나고 아군과 주민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지만, 그 가족들은 원한을 깊게 가질 수밖에 없엇습니다.

    제 6촌 형님이 빨치산이었고 그 분의 아들(지금 68세)은 부산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엘리트였지만, 결국 유치원 원장으로 아직까지 자기 꿈을 펼치지 못한 채 지내고 있습니다.

    그 육촌 형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 그것은 무엇 때문이냐? 우리 삼촌이 지리산 토벌대장이었습니다. (말이 토벌 대장이지, 파출소장 직위였고 , 그 후 삼촌은 면장을 했습니다.) 촌 수로 따지면 그 빨치산 형님의 오촌 당숙이 자기를 잡으려 순경들을 데리고 산을 수색했다는 이야깁니다. 참, 어이 없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거의 원수처럼 지냅니다. 우리 삼촌이 잡지도 못했고 다른 사건에서 결국 그 육촌 형님은 총살을 당했습니다.

    혹시 함양 경찰서 습격사건이란 걸 들어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병주가 쓴 <지리산>에 나오는 빨갱이들이 말하자면 함양 출신입니다.(대표, 하준수. 당시로서는 동경 유학파로 굉장한 영향력을 행세했지요.)

    당시 빨치산은 죽기아니면 살기 식으로 해서 악명이 굉장이 높았다고 합니다. (김원일의 소설이 있습니다. )

    <하민혁님, 술이 또 치받아 오는군요. 오늘은 이만 했으면 합니다. 당연히 내일 또 나머지 이야기를...>

    • 하민혁 2009/05/12 04:06  편집/삭제  댓글 주소

      아, 방금 위에서 답글을 쓰고 있는 사이에 댓글 하나를 더 남겨주셨네요. ^^

      맞습니다. 위에서 저도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밝혀적기가 좀 뭐해서이긴 하지만, 선라이트님이 말씀하신 육촌형님과 삼촌의 문제는 그 시대를 기억하는 혹은 그 시대의 연장선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공히 나타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의식의 한 결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입니다.

      무튼, 얘기를 좀더 듣고싶습니다. 다른 얘기도 더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7. 성우 2009/05/12 14:41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책을 읽기는 하는 모양이구나...
    난 이놈 한글이나 구사할줄 아는 놈인가 싶었는데.

  8. 단군의땅 2009/05/15 05:34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저도 대딩이나 고3시절에 읽어봤으니, 할 말은 있을 듯 하내요.
    뭐 당시에 창비에서 우리문학 여기까지 왔다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 칭찬했던 것도 기억나고..
    (개인적으로는 저는 조정래소설보다 "김영현의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가 더 나아보이던데 차라리... 이창동이나 임철우도 괜찮았고)


    하여튼 엄청난 작품인 것은맞지만, sunlight님이 지적하신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의 고증과 역사적 사실 측면에서.. 그 엄청난 약점이 있음을 부인 못할 듯 합니다.

    조정래씨가 이러면에서는 너무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글을 쓰고있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조정래씨가 추후에 쓴 소설 아리랑에 대해서 몇글자 한 번 보죠. (태백산맥 한강과 더불어 삼부작이라고 하지요).


    첫째로,
    “조정래 아리랑 허구” 재반박"
    주무대인 김제평야와 그 역사적 사실의 허구성을 밝혀놓은 이영훈의 반박은 우선이겠고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7/09/07/200709070155.asp


    둘째로,
    아리랑에서 해외에서 가서 고초를 겪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경우입니다. 현지의 분(이를 소개한 분은 현재 유행하는 보수우파이라거나 진보좌파 그런측면에서 보면 진보쪽에 딱히 더 가깝다고 봐야할 분 입니다)이 자신이 읽었던 미국의 기사의 논지를 예를 들며 소개하더군요.

    "아리랑의 내용중 하와이 이주민들이 사탕 수수 농장에서 채찍 맞는 장면등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으면 고생하는 장면이 수없이 나온다., 왈 그당시 채찍을 들고 말타고 다닌 것은 맞지만, 때리는 일을 거의 없었고 더구나 1920년대 쯤에 아예 채찍은 사라졌다...."

    하와이 현지에서는 아리랑이란 소설자체을 심한 왜곡이라고 바라본다는 것이지요.



    셋째로

    아리랑을 읽고난 더 덧을 붙여놓자면...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자본주의하에 첨단(?)을 걷는 우리 의류 쇼핑몰 20대 한 젊은 사장님께서는
    이런 소설 아리랑을 보면서...어떻게 생각을 가졌을 까요.

    무엇인가 붉은 악마와 민족적 자각심에 잔뜩 깨어있는 듯한 감상문(?)을 잔뜩 남겨놓으셨으더군요.
    http://blog.naver.com/wish282?Redirect=Log&logNo=130039439509

  9. 단군의땅 2009/05/15 06:14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아무리 엄청난 이야기를 담고 있는소설일지라도, 연대기적 사실은 제대로 표현해야 합니다.

    온갖 영웅이 등장하는 김용의 무협소설에서도 역사적 결과(영웅문1부에서 금나라에 패전을 거듭하는 곽정의 송나라나, 영웅문 3부에서 장무기가 등장하지만 몽고를 물리치고 일개보조인물인 주원장이 결국 세우는 명나라 등)에 대해서는 비틀기를 거부하지요.


    그렇다면.. 조정래씨의 아리랑은 어떨까요?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밝혀놓자면...
    아리랑의 주내용은 1900년대 초 한일강제합방 당한 이후 김제 만경 평야가 중심으로 수탈당한 것을 중심으로 쓰여진 소설입니다.

    그럼 다음의 순환논리 1, 2, 3, 4 를 살펴보지요.



    단계1. 이영훈은 수년간의 근거자료 분석 및 데이터 작업을 한 끝에 교과서, 백과사전이 틀렸다는 결과를 얻어 이를 발표.


    단계2. 많은 사람들이 조정래가 쓴 아리랑을 가지고 비판(너는 조정래의 아리랑도 안 읽어봤냐?)


    단계3. 이영훈은 이를 반박하기 위해 조정래 소설의 근거등이 허구임을 밝혀주고 비판함
    http://blog.naver.com/olivemana?Redirect=Log&logNo=100042156705


    단계4. 조정래는 기존 교과서, 백과사전을 근거로 이영훈의 논문을 반박?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6132321261&code=940100




    뭐 지금도 인터넷에서 김제평야와 관련된 글을 보면
    이미 조선시대부터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넓은 들녘"이니 "한반도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 내고 있는" 이라며 소설 아리랑 그대로를 그려내고 있는 데 그게 1900년대 초반에는 황
    무지였던 사실...하지만 그 대하 소설 자체가 근본적으로 말이 안되는 허구를 바탕으로 쓰여졌을지도 모르는데.


    하긴 김훈 조차 한국일보 논설위원 시절 다음과 같이 발언했던 적이 있으니
    http://namdou.com/php/zboard/view.php?id=namdo_moonhak&no=3
    조정래의 르포 근성은 악착스러운 바 있다. "그가 소설 속에서 제시하고 있는 진실은 기본적으로 사실의 힘에 바탕하고 있다. 역사인식과 상상력이 사실을 재조립한다. 그는 사실의 편이다"라고 믿고 있었으니...


    21세기의 최첨단을 걷고있는 우리 어여쁜 사장님께서는 민족적 자각심을 일구게 해준 아리랑은 차라리 양반으로 봐야할 지도.

    • 하민혁 2009/05/20 14:20  편집/삭제  댓글 주소

      링크해주신 자료 잘 봤습니다.
      잠시 짬을 내어보니, 한창 논쟁이 있었네요.

      http://www.sdjs.co.kr/read.php?quarterId=SD200702&num=108
      http://www.sdjs.co.kr/read.php?quarterId=SD200703&num=130

      참고 겸하여 링크 걸고, 인상적인 얘기 하나 옮겨봅니다.

      "‘뉴스 후’는 나의 조정래 비판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방송 도중에 몇 차례나 꺼내어 내가 위안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간 여인으로 이야기한 것처럼 매도하였다. 이것만큼 심한 왜곡보도의 다른 예를 찾기 힘들 것이다. ‘뉴스 후’가 반복 상영한 3년 전 ‘MBC심야토론회’의 장면에서 나는 위안부라는 범죄행위가 저질러진 데는 그에 협력하는 위안소의 포주와 같은 다수의 조선인이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그 발언을 여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간 공창이었다는 뜻으로 보도함으로써 큰 사회적 물의가 빚어진 것은 오마이뉴스라는 인터넷 신문의 어느 경박한 기자가 그렇게 보도했기 때문이지 다른 무엇 때문은 아니었다.

      3년 전에 언론이 범한 실수는 3년 뒤 MBC의 ‘뉴스 후’를 통해 정확히 반복되었다. 당초 알아듣지 못할 사람들을 상대로 복잡한 이야기를 한 나 자신의 잘못도 적지 않다. 그래서 지난 5월에 출간한 『대한민국이야기』(기파랑)라는 책에서 나는 일본군 위안부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자세하게 썼다. MBC의 PD에게 묻는다. 그대가 비판의 적으로 삼은 사람을 그대는 얼마나 성실하게 조사하였는지. 역시 세밀한 조사와 물샐 틈 없는 고증은 한국의 방송과 무관한 일인가. 한국의 방송 역시 무책임한 역사소설처럼 한 자락의 바람에 불과한 것인가." 時代精神

  10. 보보 2009/05/20 09:54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아버지께서 대학 교수 였던 관계로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집으로 혹은 아버지의 연구실로 자주 여러 학회지나 계간지, 월간지 따위가 배달되어 왔었는데, 그중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소설도, 그렇다고 무슨 논문도 아닌, '소설 太白山脈 그 현장을 찾아서(도서출판 鍾소리. 1992)’라는 거의 취재 리포트에 가까운 고발서 같은 책이었는데, 그책은 당시에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 '태백산맥'의 허구성을 알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해당 소설을 보기도 전에 그 책의 비판서 부터 접했으니, 상당히 순서가 잘못되긴 했지만, 내용을 접하다 보니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점점 멀어졌다. 그 이유는 이책을 읽어보면 알 것이다. 물론 어쩌면 나의 편협함으로 게으른 독서량을 무마하려는 건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그 책이 전해주는 분명한 메시지는 이거다...

    “소설은 허구의 산물이다. 꾸며낸 이야기가 역사와 다르다고 해서 트집 잡을 수 있느냐. ‘太白山脈’은 그저 소설로서만 읽으면 된다!” 작자 자신이 “모든 이야기는 증언과 확인을 거친 것”이라고 序文에서 당당히 밝힌 ‘良心宣言’은 어디로 갔는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니 교활하다기 보다는 ‘음흉하다’는 표현이 제격일 것 같다.

    [출처] 태백산맥의 허구성(이경남)|작성자 좋은친구

  11. 어린이 2009/05/19 18:17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태백산맥 주인공이 실존인물이에요?

  12. 어린이 2009/05/22 17:13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그럼 태백산맥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실존인물 있어요??

    태백산맥에 실존인물 나온다던데...

    많이 유명하진 않았지만... 독립투사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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