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참으로 기쁜 날이었다. 오후 4시 25분인경인가 부**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방금 선관위서 유시민파가 편취해간 당인 받아왔다고, 뭐 하느냐고, 빨리 와서 축하하자고. 기뻤다. 참으로 기뻤다.

며칠 전에 다른 라인을 통해 어제 오후나 오늘 오전 중으로는 당인을 되돌려받게 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은 터였기는 하지만, 막상 당인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고 나니 그 기쁨이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당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나는 기뻐 춤이라도 추고싶었다.


2. 어제는 또한 우울한 날이었다. 불과 1개월 전에 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당 집행위원 중 일부가 당을 나가 다른 당에 입당했다. 당사에서의 번개를 때렸다. 그냥 있기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가슴을 치밀어 오른 때문이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제 오후 5시에 예정되어 있던 출마자 모임(이후 곧 취소됨)과 집행위원회의를 직접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는 건지, 뭘 어떻게 했기에 이런 어이없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는지,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 하는 것인지를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3. 당사에 도착하니 당 대표가 있었다. 당인을 받게되기까지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축하 인사를 하는 것도 잠시, 당 대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나의 일방적인 항의였다. 당 대표와 집행부에 대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총선이 내일 모레인데 어떻게 당 집행부가 당을 떠나는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무엇보다도 총선을 준비해온 총선 기획단이 탈당을 할 수 있느냐고. 지금까지의 총선 준비가 결국은 탈당을 위한 준비였던 것이냐고.


4. 이야기 끝에 그렇다면 총선은 이제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답은 총선 불가였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이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답이었다. 이해가 갔다. 그동안 총선준비를 위해 뛰어온 당 대표로서는 그럴만도 했다. 총선을 1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총선기획단이 와해되었으니, 그것도 그냥 와해된 게 아니라 총선기획단 자체가 다른 당으로 날라가 버렸으니, 대표로서는 기가 막힐만도 한 일이었다.

물론 여기서도 하나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당 대표가 그런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 대표는 기실 저들의 탈당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방조 내지는 묵인했다는 셈이 된다. 수백 수천의 당원을 책임지고 있는 대표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나는 대표 면전에서 바로 물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담하진 못했다. 그렇기에 이는 일단 여기까지만 하겠다).


5. 총선은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의 목적이 총선을 통한 의회 진출에 있다거나 수권 능력을 통한 정권 창출에 있다거나 하는 원론적인 이유를 떠나, 총선참여만이 당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에 참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 대표는 그렇다면 한번 해보라고 말했다.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경주하여 한번 할 수 있도록 해보라고 밝혔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진행될 즈음에 당사는 한바탕의 소란이 있었다. 당원 가운데 한 사람이 당 대표에게 이런저런 다른 일로 이의를 제기했고, 이것이 급기야는 저 개혁당스러운 고성으로 이어졌다. 이후 당 대표는 자리를 떠났다.)


6. 당 대표가 자리를 비운 이후 조** 집행위원이 늦어지는 바람에 집행위원회의가 미루어졌다. 그동안 총선 참여 여부 문제를 놓고 김** 집행위원과 1시간 가량 토론을 벌였다. 어떤 길이 당이 살 수 있는 길이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인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나는 총선 참여가 당이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주장이었고 김** 집행위원은 총선 불참여가 당이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입장이었다.

김** 집행위원 주장의 요지는 당의 총선 참여에 따른 당 해산의 위험성이었다. 총선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에는 당이 잔존할 수 있는 6개월의 시한이 주어지지만 총선 참여를 하는 경우는 총선 직후 당 해산이라는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내가 주장한 요지는 총선은 당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최고의 그리고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었고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당이 새롭게 동력을 받을 수 있는 기회란 영원히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다(이에 대해서는 내일 새벽이나 저녁에 자세한 입장을 밝혀 적을 생각이다).


7. 조** 집행위원이 도착했고 곧 이어 집행위원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졌다. 당 대표가 빠지고 4인의 집행위원으로 시작한 회의에서 부**님을 제외한 조** 김** 최** 3인은 총선 참여 불가 입장을 피력했고 결국 그렇게 결정이 났다. 단서는 당원 누구라도 당게를 통해 자신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당원의 추인을 받는다면 참여 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의견은 나중에 밝히겠지만, 이것은 잘못된 결정이다. 로드맵을 제시하고 하는 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않다. 지금은 시간이 없다. 힘을 하나로 모아도 부족할 판인데 집행위서 그 결정을 유예한다는 것은 결국 총선 참여 의지를 꺾는 일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그리고 어제 당사에서도 그런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지만, 이번 집행위의 결정은 두 가지 점에서 크게 모순되어 있다. 첫째, 이 결정대로라면 지난 번 집행위의 총선기획단은 인정할 수 있지만 당원이 제안하는 총선기획단은 믿지 못하거나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둘째, 집행위가 인정한 지난 총선기획단에는 미리 요구하지도 않았을 뿐더라, 또한 1개월이 지나도 나오지 않은 로드맵을 당원에게는 하룻밤 새에 만들어올리고 그런 다음 당원의 동의까지를 얻어내라고 하는 것은 억지에 가까운 요구이다.


8. 집행위원회의가 끝나고 하도 답답해서 그동안 (좋지 않은 의미로) '개혁스럽다'고 말해온 그 짓을 나 또한 저지르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쥐고 있던 라이터로 탁자를 쳤다. 말도 안 되는 결정이라고. 덕분에 개혁당 신사이신 조**님한테 멋지게 한 방 먹었다.


9. 당사 밖으로 나오니 짖궂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각은 벌써 자정. 당원들은 당사 근처에 있는 호프집으로 기어들어갔다. 1차 당인 축하 번개. 새벽 1시. 호프집에서 밀려나서 밖으로 나오니 빗줄기는 더욱 굵어져 있었다. 비를 맞으면서, 막내라는 이유로 조**님이 불 켜진 주막을 찾아 이리저리 뛰었다.

결국 여의도서 주막찾기는 포기하고 영등포행. 족발집에서 2차 번개를 가졌다. 새벽 4시. 오전 영업을 위해 이제 그만 문을 닫아야 한다는 주인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자리를 옮겼다. 해장국집에서 3차 번개. 모두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했고 하나둘씩 자리를 찾아서 드러눕기 시작했다. 밖은 이미 밝아 있었다. 드러누운 분들을 깨워서 밖으로 나오니, 밤새 추적 추적 내리던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져 있었다.

밤새 통음을 하고도 뭐가 아쉬운지 그 가랑비를 맞으면서도 서로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는 데만 몇 분.. 모두 비맞은 새앙쥐 꼴이 되어서야 비로소 찢어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6시 40분. 당게판에 '총선과 코미디언'이라는 글을 올리고 그동안 들어온 메일 문의 몇 개 처리하고 씻고 하니 오전 9시. 떨어진 자(尺)처럼 그대로 침대위에 엎어졌다.


10. 오전 11시. 알람이 울리고 다시 일상으로. 어제 못다 한 일 몇 가지 처리하고 나니 어느덧 오후 2시. 서둘러 집을 나서 업무와 총선 관련 일로 한 두 곳을 방문했다. 그리고 당사에 갔다.

당사 문을 여니 강아지 한 마리가 마중을 나왔다. 그리고 처자 한 사람이 당사를 지키고 있었다. 총선이 목전에 다가와 있는데 총선 참여 여부 하나 결정하지 못한 채로 당사는 적막강산. 당 대표는 지방 출장 중이며 월요일에나 나온다는 처자의 설명이었다.


11. 잠시 후에 청**님이 당사에 들렀다. 그러나 다시 침묵. 할 말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당원 몇몇에게 전화만 돌리다가 나오려는데, 김**님 송**님이 당사에 들어왔다. 아까 나를 맞은 강아지는 다름아닌 김**님이 데리고 와서 처자한테 맡겨둔 강아지였던 모양이다.

뭔가 한 마디 하고싶었으나 역시 마땅히 할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모를 서먹한 상황을 견디기 싫어서 당사를 나왔다. 김**님과 송**님은 당사에는 뭣 하러 왔을까? 물론 한 때의 동지가 당사에 있다는 게 탓할 일은 아니다. 설사 당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같은 길을 가야 할 동지들이기에 오히려 반겨 할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가? 어제의 번개를 있게 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당의 총선기획팀을 이끌던 사람들이 아닌가? 당원들의 동의 한번 구하지 않은 채 당을 나감으로써 당의 총선 전략 자체를 무위화시키고 결국은 당인을 되찾은 바로 그날 총선 참여 불가라는 결정을 있게 한 장본인들이 아닌가? 그들이 왜?


12.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최근 며칠 동안 거의 연속으로 마신 술이 내내 속을 메스껍게 했다. 내 메스꺼운 속이 행여 옆자라에 앉은 사람에게 역한 냄새를 풍기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작성자 : 하민혁  등록일 : 2004.03.17 22: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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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미디어몹 2006/04/27 17:47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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