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은 날이었다.
티비로 생중계되는 영결식과 노제를 지켜보던 중에 문득 홍사용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 故 노무현 대통령 영전에 바침
/ 안도현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무거운 권위주의 의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끝도 없는 지역주의 고압선 철탑에서
처절하게 버티다가 눈물이 되어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편 가르고 삿대질하는 냉전주의 창끝에서
깃발로 펄럭이다가 찢겨진, 그리하여 끝내 허공으로 남은 사람

고마워요, 노무현
우리가 아무런 호칭 없이 노무현이라고 불러도
우리가 바보라고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아, 그러다가 거꾸로 달리는 미친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당신은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려 당신은 으깨진 꽃잎이 되었어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팔뚝으로 받쳐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저 하이에나들이 밤낮으로 물어뜯은 게
한 장의 꽃잎이었다니요!

슬퍼도 슬프다고 말하지 않을래요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땅을 치지 않을래요
복받쳐도 복받친다고 소리쳐 울지 않을래요
아아, 부디 편히 가시라는 말, 지금은 하지 않을래요
당신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이 나라 오월의 초록은 저리 푸르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때리지 않잖아요
당신이 이겼어요, 당신이 마지막 승리자가 되었어요
살아남은 우리는 당신한테 졌어요, 애초부터 이길 수 없었어요

그러니 이제 일어나요, 당신
부서진 뼈를 맞추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흐트러진 대열을 가다듬고 일어나요
끊어진 핏줄을 한 가닥씩 이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꾹꾹 눌러둔 분노를 붙잡고 일어나요
피멍든 살을 쓰다듬으며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슬픔을 내던지고 두둥실 일어나요
당신이 일어나야 산하가 꿈틀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동해가 출렁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한반도가 일어나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아아, 노무현 당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나는 왕이로소이다
/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며는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며는
<맨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하는 그 소리였지요마는, 그것은 '으아-'하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니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니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 날에 동내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 오고 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는 아무 대답도 없이 속 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빨까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질치며 '으아-'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 달이 무리스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없이 한숨을 길 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 버렸소이다. 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 조으실 때에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뺨에 떨어질 때이면 왕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열한 살 먹던 해 정월 열나흘 날 밤, 맨재텀이로 그림자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명이나 긴가 짜른가 보랴고.
왕의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럽게 놀리더이다. 모가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무꾼의 산타령을 따라 가다가 건넛 산 산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꾼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달 우물로 가자고 지름길로 들어서며는 찔레나무 가시덤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그래 철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좇아가다가, 돌뿌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로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아,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 - 어머니 몰래 남 모르게 속 깊이 소리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우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 뚝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연(坎中連)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에 장군 바위에서 날마다 자고가는 뜬 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백조3호>(1923)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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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바람에게묻다 2009/05/29 22:37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불쌍하신분!!
    못나도 우리의 대통령 잘나도 우리의 대통령!!
    이제 국민의 기억속에서만 존재하지만
    남아 있는 국민들에게는 좋은 기억으로만 남길 바래요

    이제 빠들의 울분과 까들의 냉소를 모두 뒤로하고 편하게 잠드소서

    • 하민혁 2009/05/30 02:17  편집/삭제  댓글 주소

      편히 잠드셨으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할까싶네요.
      마치 폭풍전야를 보는 듯 해서요.

      <덧> 요즘 '시기와 사람을 영 잘못 택했다'는 말이 유행인 것같던데.. 노통께서도 시기를 영 잘못 택하신 듯싶습니다. 여러가지 점에서요. 선지자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4. sunlight 2009/05/30 03:13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이제 신이 되신 노무현님 편히 잠 드소서.

    어쨌거나 열심히 하신 것은 나하고 크게 차이 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북한이나 국제적인 면에서 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부디 천국으로 가시고 품성 좋은 인간으로서 영원히 같이 하기를 바랍니다.

    • 하민혁 2009/05/30 03:36  편집/삭제  댓글 주소

      아직 49재 끝나려면 멀었습니다. 1주년도 아직 멀었구요. 10주년까지는 더 기다려야 할 겁니다. 최소한 그때까지는 많이 유의하시길 모쪼록 권합니다.

      <덧> 이명박 청와대가 이번에 아주 삽질 제대로 했더구만요. 1. 시청 광장 폐쇄, 2. PVC 만장 -_- 저런 엽기발랄한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떤 머리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어요.

      <덧> 그나저나 요즘 여기저기 전화질해대는 스토커 때문에 아주 죽을 맛입니다. 진중권이 진보신당 게시판에 더 이상 글 안 쓴다고 한 모양인데, 그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에효~

  5. 별가 2009/05/30 08:42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pvc만장도 오버한 감이 있지만 제가 제일 이해가 안가는 것은... 죽고 나니까 죄다 나서서 친한척에 영웅만들기를 한다는 것. 살아 있을때 검찰 조사받을때 그렇게 해 주던가. 특히 MBC 이건 뭐... 영결식도 끝났으니까 이제 그만 하려나 아니면 계속 하려나 궁금해 지네요. TV에서는 시청앞 광장을 노란색 물결로 만들었다고 떠들어 대면서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하던데, 경험상 우리나라 국민들은 TV에 안나오면 길어봤자 1달만에 기억속에서 없어 지지요.

    • 하민혁 2009/06/01 21:15  편집/삭제  댓글 주소

      우리나라 언론, 문제 많습니다. 특히 방송의 경우 그 정도가 도를 한참 넘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공영방송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자주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전부 엎어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다 짤르고 다시 시작해도 지금보다는 더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_

  6. 2009/05/30 11:10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우리가 뽑고 우리가 죽였져?
    죽음이 노통에게 면죄부를 주었지만, 우리는 저 자리에 가서 난리생블루스를 쳤다해도 아무런 면죄부를 받을 수 없었죠. 그걸 알아야하는데...

    노통이 죽자마자 개떼같이 몰려드는 저 가증스런 프레스,언론놈들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그들의 머리속에 든 건.

    '특 ㅋ 종 ㅋ' '팔아먹을것이 생겼다!'

    이제 뭘 봐야하나요?

    덧.한겨례 이번에 많이 벌었다죠?

    • 인사이트 2009/05/30 11:26  편집/삭제  댓글 주소

      한겨레와 경향의 기사를 보면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다시 촛불이 들어 올려지는 것 같은...

    • 하민혁 2009/06/01 21:24  편집/삭제  댓글 주소

      한 목숨이 죽었으니 당연히 애도를 표하고 나아가 추모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그 정도가 확실히 심했습니다. 다른 목소리 자체가 아예 들어설 여지를 주질 않았지요. 오죽 했으면 방송 아나운서가 울먹이면서 방송을 했을까요?

      <덧> 뭔가 더 심한 말 한마디 했다가 그냥 지웁니다. -_

  7. 쿄쿄쿄 2009/05/30 11:17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북한 핵실험도 물타기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더군요.

    북한과 짜고 북풍을 일으켜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집중된 이목을 다른 데로 유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고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전 세계 독재자인가봐요. 물타기하려고 안보리 회의까지 소집하고....ㅋ

    • 하민혁 2009/06/01 21:30  편집/삭제  댓글 주소

      이쪽이고 저쪽이고 언제 제장신들 좀 차리려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때는 제정신 차리는 게 더 문제겠다는 생각도 들고.. 무튼, 그렇습니다.

      <덧> 그나저나, 좋네요. 영결식 끝나니 그나마 할 말도 할 수 있고 해서 말이지요.

  8. 인사이트 2009/05/30 11:2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아서 한미FTA 타결하는 일만 남았나요?ㅡㅡ;

    사람들이 제발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을 동일시 하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하민혁 2009/06/01 21:33  편집/삭제  댓글 주소

      제가 하고싶은, 그러나 미처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하지 못한 말씀을 칼같이 해주셨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을 동일시하는 이상한 행태 좀 아니 봤으면 좋겠다는. -_-;;

  9. 어린이 2009/05/30 17:20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not bad

  10. binnamoo 2009/06/01 14:24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시 낭송을 들으면서

    .
    .

    한 영혼의 초혼,
    한 영혼의 위로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의
    더러운 창자속의 숙변같은
    적개심을 끄집어내어
    눈덩이처럼 굴리고 싶은
    한마당 부조리극...

    일어나요 적개심
    일어나요 분노
    일어나요 이 땅의 좀비들이여
    어서 일어나서
    명박산성을 불살라버려요

    우리는 난장판이 그리워요
    깽판이 그리워요
    당신의 이름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요
    .
    .
    .
    마치 이런 의미 같다는...ㅠ.ㅜ

  11. dididi 2009/06/21 17:18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노무현 대통령님...당신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립고 눈물이 납니다.

    홍사용의 당신은 왕이로소이다..그 시를 읽으면서 당신을 생각합니다.
    당신은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을 위해서 애를쓰시다가 쫒겨나신..눈물의왕 이셧습니다.
    오늘 당신을 추모하는 콘서트가 열린답니다.
    연대노천에서 열리려고햇는데 연대당국에서 불허해서 성공회대에서 열리기로 했답니다.
    바람이불면 당신이 오신줄 알겟습니다...

    오늘 당신께서 그곳으로 오실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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