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지하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묻고 있다. "나의 이상한 취미"라는 칼럼을 통해, 유순하고 착한 자신을 반골로 만들었던 시대와 세상을 말하면서다.


김지하 - 나의 이상한 취미


김지하는 지금 세상에서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했음에도 그 바뀌고 변한 시대와 세상을 리드할 생각은 전혀 없는 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케케묵은 이야기나 우려먹으려 드는 우리의 세태를 꼬집는 말이다. 

김지하의 글에서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미래가 자양분으로 삼을 새로운 아젠더에는 관심도 없이 애오라지 눈앞의 한갓된 가십들에 정신을 앗기고 있는 세태에 대한 답답함이다. 김지하는 이 답답함을 최근에 겪은 두 개의 사례를 들어 전하고 있다.

하나는, '타는 목마름으로'에 대한 인터뷰를 청하는 어느 대학생 기자의 전화다. '진짜 멘토는 자기 세대의 삶 안에 있다'며 '자기 시대의 역사는 자기가 공부해야 한다'는, 그러므로 철 지난 시를 팔아먹는 대신에 지금 이 시대를 관통하는 '못난 시들'을 읽으라는, 자기 시대의 담론을 펼치라는 고언에 이내 전화를 끊고 사라져버린.

또 하나는, '현대에도 유학은 유효한가'라는 강연 도중에 사라져버린 안동시장의 얘기다. '오늘날에도 유학이 유효하려면 오늘의 오역사건인 4대강 개발정책을 정면 반대해야한다'고 말하자 객석에 앉아 있던 시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김지하, 언제까지 반골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김지하는 여기서 지금 우리 시대가 자신을 반골로 만든 시대에서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 함을 비통해 하고 있다. 그래서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반골로 남아 있어야 하는 거냐'고 반문한다. 시대가 다시 자신을 반골로 만들었던 몇 십년 전으로 역류하고 있다는, 혹은 그 시대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질 못 하고 있다는 데 대한 한 선각자의 통절한 질책이다.  

이같은 김지하의 지적에 대해 진중권은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라고 말한다. 황석영 변절 논란이 한창일 때 진중권이 뽑아 날린 이 멘트는, 한 추종자의 표현 그대로 '국민 카피라이터'의 진수를 보여주는 칼같은 카피다. 문제는 그 카피를 받쳐주는 컨텐츠가 없다는 데 있다.

컨텐츠가 뒷받침되지 않는 카피는 공허하다. 그것은 기껏 재기발랄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김지하가 짚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잊혀졌으면 한다는 것이고, 더 이상 반골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지하를 잊은 지 오래라는 너의 머리 속에 든 컨텐츠가 도대체 어떤 거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진중권을 '국민 카피라이터'로 부른 예의 저 추종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지난 십 수년 동안 인문사회 분야의 저작물 가운데 7~80 퍼센트는 이른바 좌파 지식인이 만든 것이라고. 이래도 컨텐츠가 없다 할 수 있겠느냐고.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기 전에 우선은 한번 되돌아볼 일이다. 과연 그 저작물이 그 양만큼의 질적인 성취를 이루고 있는지를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문제는 카피가 아니라, 카피를 뒷받침할 수 있는 컨텐츠다


"조갑제의 문제는 조갑제를 넘어서지 못 하고 있다는 데 있다"는 어제 글에서 내가 말하고 있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며칠 전 "광장을 회의하는 구시대는 이미 저물었는데, 광장의 새시대를 책임질 세력은 아직도 눈물 타령"이라며, "이미 저문 구 시대가 여전히 광장의 주인인 양을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라고 말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김지하는 묻고 있다.
"한동안 이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듯,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두 개의 명제 '생명과 평화'는 눈 씻고 봐도, 그 어디에도 자취 없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더욱이 자살한 사람 빈소에 촛불이 켜지고 있다. 자살이라는 이름의 비겁한 생명포기에도 촛불인가. 그렇다면 그 촛불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고.

컨텐츠는 없고 카피만이 난무하는 세상,
이것이 내가 보는, '자살이라는 이름의 비겁한 생명포기에도 타오르고 있는' 저 촛불의 정체다.




김지하의 칼럼 "이상한 취미"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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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위주의와 주체성 그리고 노무현

    Tracked from 구월산의 미래경영 2009/06/01 14:05 Löschung

    과거 우리는 권위가 내재되어있는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상품이 갖고있는 권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내가 획득한 권위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 속에는 나는 안전, 소속, 존중과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상품은 관계를 매개하는 역할을 했고 기업은 이런 상품을 생산해내는 사회기관이었다.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사회계층을 만들어낸 것은 상품과 기업들이고 중산층을 계속 생산해내는 동안 시장은 선순환 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공장에서 쏟아지는 상품들,..

  2. 정도전의 혁명의식은 노무현에게로, 국민에게로 이어지고...

    Tracked from 정철상의 "커리어노트" 2009/06/03 21:13 Löschung

    우리 민족은 정말 나약한 민족인가? 잘못된 왕조를 뒤엎는 혁명의식은 없었는가? 우리가 우리 민족에 대해서 가장 오해하는 사실 중에 하나가 우리 자신의 민족성에 관한 것이 아닐까.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 민족이 겁이 많고, 뭉치면 서로 싸우길 좋아하고, 패거리가 강한 폐쇄적 집단 문화이고, 힘이 강한 자에게는 기대길 좋아하는 선천적으로 나약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끊임없이 당파 싸움을 벌여왔고, 외세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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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멍멍멍멍멍멍멍멍 2009/06/01 11:39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DAUM View'에 보낸 글입니다. ↙ 추천하신 분 외에는 댓글쓰기를 엉금합니다! _ '선지자' 하민혁



    .... 갑자기 생각나는말..

    .............. 예엠뱅....

    죄송합니다. 너무 솔찍해서. ㅡㅡ;

    • 하민혁 2009/06/01 11:48  편집/삭제  댓글 주소

      그거 봤다는 잉간이 아니.. 그거 보신 분께서 추천은 또 절대 안 하고 있지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씹을 때는 씹더라도 지킬 건 지킵시다.

      ↙ 추천하신 분 외에는 댓글쓰기를 엉금합니다!

  4. 블리드 2009/06/01 11:57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늘 진보에겐 왜이렇게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걸까요?
    진보는 책도써야하고, 강연도해야하고, 논리적이어야하고, 청렴해야하고,
    미래지향적이면서, 과거에 연연해서도 안되고 등등등...

    보수는 그런거 안해도 잘만먹고 잘살잖아요?

    그 이유는 뭘가..

    • 하민혁 2009/06/01 12:05  편집/삭제  댓글 주소

      세상을 바꾸는 게 어디 그렇게 만만한 일이겠어요?
      아마 그래서일 겁니다.
      게다가 보수에 대해 무슨 들이댈 잣대가 있어야 말이지요. 만날 똑같은데요.
      그렇지 않은가요?

    • 2009/06/01 21:05  편집/삭제  댓글 주소

      원래 비주류가 주류가 되려면 자원이 필요합니다.
      비주류가실질적으로 몇 안되는 자원중에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관심일 거구요.
      관심을 얻으려면 상대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현재 주류와는 차별화를 두어야 하겠지요.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자충수가 많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만.

  5. 구월산 2009/06/01 11:58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글이 좀 모호하게 다가오네요.
    제 생각에는 카피가 가장 강력한 컨텐츠인데 말이죠.
    짧은 메세지 속에는 엄청난 컨텐츠가 들어있지 않나요?
    그걸 없다고 하면 모르는 것이 돼 버리는데..없다가 아니라 모른다가 정답일 것 같습니다.

    • 하민혁 2009/06/01 12:07  편집/삭제  댓글 주소

      에이, 그건 아니지요.
      카피는 항상 무엇에 대한 카피인 겁니다.

      <덧> 카피가 가장 강력한 컨텐츠라는 얘기는 금시초문입니다. ^^

    • 구월산 2009/06/01 13:07  편집/삭제  댓글 주소

      카피를 짧은 메세지라고 정의했는데,광고에서는 카피가 심장이죠. 개인 경험상 100 페이지 보고서보다 이걸 함축한 몇개 단어를 만드는데 더 많이 시간을 허비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그걸 원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카피는 컨텐츠가 가진 정수입니다.
      문제는 카피가 말장난이냐 아니면 본질을 가지고 있냐라는 것이죠. 그건 카피가 가진 영향력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그 카피는 본질을 건드린 것이겠죠.


      <> '막말'은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노무현 브랜드죠. 그런데 '막말'이라는 단어는 너무 멋진 브랜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사회는 그렇지도 않으면서 너무 고상한 척 해왔거든요. 컨텐츠는 단순할수록 강력합니다.

    • 하민혁 2009/06/01 13:13  편집/삭제  댓글 주소

      네. 맞습니다. 말씀하신 취지는 일백프로 이해했습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맥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피란 결국 무엇이 있을 때 그 의미를 갖는다는 얘기입니다. 님이 예로 든 광고의 경우를 보더라도, 카피란 결국 그 광고의 '대상'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덧> '막말'이라는 브랜드가 먹히는 것 또한 컨텐츠가 그걸 받쳐주니까 가능한 일인 겁니다. 막말로 말해서 전혀 노통이 전혀 어떤 막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저 카피를 썼다면 그게 먹혀들었을 리는 만무한 거니요. 그나저나, 아무래도 지금 님과 나는 전혀 딴 얘기를 마치 같은 얘기인 양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얘기가 계속 겉돌고 있다는 인상이구요. 가능하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주목해주셨으면 합니다.

    • 구월산 2009/06/01 14:00  편집/삭제  댓글 주소

      진보나 보수 모두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보수는 만들어진 것이 있으니까 더 심각한 것은 진보쪽이라는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노무현과 그의 죽음은 정치에서 새로운 컨텐츠가 무엇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현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주 드라마틱하게요. 그런데 왜 그걸 못보시는지 저는 그게 이해가 않되네요. 탈권위나 참여, 민주주의 같은 가치말고 아주 희안한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말입니다. 그런 희안한 물건은 당연히 없습니다.

      <>컨텐츠는 너무 길고, 카피는 너무 짧으니 하민혁님이 생각하는 컨셉이 무엇인지 좀 알았으면 좋겠네요.

    • 하민혁 2009/06/01 14:03  편집/삭제  댓글 주소

      아, 그런 취지에서 하신 말씀이었군요. 그러니 얘기가 계속 겉돌 수밖에는요. 하지만, 말씀하신 부분(노통에 대한 평가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으니, 여기서 뭐라고 말하기는 좀 힘들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통해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이 블로그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도 결국은 그 얘기이므로 그 시기도 그리 머지는 않을 거구요.

  6. toru 2009/06/02 02:27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아. 또 낙였다.

    제발 글 앞에 제목을 크게 써놓으세요. 하민혁~~~라고..

    • 하민혁 2009/06/02 02:34  편집/삭제  댓글 주소

      살다살다.. 별.. 참말로 싱거운 님일세.. -_

      <덧> 낚인 건 낚인 거고.. 추천은 하고 가야지.. 왜 그냥 갑니까!

    • toru 2009/06/03 15:44  편집/삭제  댓글 주소

      추천(推薦) : 어떤 조건에 적합한 대상을 책임지고 소개함


      본인의 글이 어떤 조건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는 지 알려주시면 곁눈질이라도 한번 해보겠습니다만.

    • 하민혁 2009/06/04 03:46  편집/삭제  댓글 주소

      "추천하신 분 외에는 댓글쓰기를 엉금합니다! _ '선지자' 하민혁"

      위의 글을 글자마다 한.자. 한.자. 또박또박 잘 함 읽어보세요. 그렇게 읽었는데도, 내가 왜 님께 저 글을 한 자 한 자 또박 또박 읽어보라 했는지 모르겠거든 답글 주시구요.

  7. 지나가는 이 2009/06/03 10:09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맨날 그냥 보고 지나가기만하다 공감가는 글이라 처음으로 덧글을 남겨봅니다.

    적절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가짜들이 판치는 세상이라 김지하 시인도 답답하겠죠...

    ps. 님의 글에 대한 발전적 비판도 있겠지만 일부 몰지각한 덧글들 때문에 맘고생도 심하시겠군요.

  8. 트루맨 2009/06/03 17:03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촛불이란게 참 아름다운 건데... 백의의 천사인 간호사들이 처음 캡을 받을때도 촛불을 들고,성당에 가득한 촛불들이 그렇듯 순수함과 고결함 그리고 슬픔 가득한 기도와 간구, 이런것을 상징 하잖아요?...근데 이게 이상하게 진보진영의 상징처럼만 쓰인다는 거지요. 미선효선때, 광우병때는 반미 때문에 자연 진보진영에서 썼고,노통때는 또 억울 하다고 생각들 하니까 또 그냥 자연스럽게 썼을테고...또 주로 젊은 사람들이 들었지요. 이렇다 보니 무슨 향군회니 하는 노인들이 촛불 드는게 영 어색해 보이게 된것 같단 말입니다. 북핵에 대응해서 촛불 평화집회를 노인들이 연다면(젊은층은 안 할거고) 어색하게 느껴질거란 말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런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의미가 있고 좋은것은 젊은이나 늙은이나 다 같이 공유해야 하는데 마치 한쪽만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으니 촛불이 어색한 이들은 더 큰 횃불을 들어야 하는지....

  9. 한숨 2009/06/05 10:32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촛불이 퇴색한지는 꽤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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