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랑 보수랑] 1. 헷갈리는 보수·진보
절대 진보, 절대 보수, 다원 사회엔 없어
학자들 사이에서도 용어 규정 제각각
"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맘대로 하자는 것, 보수는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놓아도 바꾸지 말자는 것""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 존재다. 진보는 더불어 사는 것, 고쳐가며 살자는 것."(5월 27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세대 특강)
"노 대통령의 경제관이나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결코 진보라고 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개혁적 보수주의자일 뿐."(5월 28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좌익정권을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복원하는 방법으로는 군부 쿠데타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이해될 것."(3월 30일 이화여대 김용서 행정학과 교수의 예비역 장성 상대 강연회 연설문)
노 대통령은 지난달 연세대 특강에서 취임 후 처음 공개적으로 자신이 진보주의자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진보정당인 민노당의 노 총장과 정통보수를 자임하는 김 교수는 노 대통령을 보수주의자와 좌파로 각각 규정했다. 진보는 정부 개입, 평등, 분배를 중시하고 보수는 시장자율, 경쟁, 성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이다. 그런데 한 사람을 놓고 어떻게 이렇게 아주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장훈 중앙대(정치학) 교수는 "정치적 입장이 다른 세 사람이 자기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미래를 바라본 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노 대통령은 보수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고, 노 총장은 수구에 가까웠던 과거의 보수주의를 비판한 노 대통령의 발언취지를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김 교수는 쿠데타로 자유민주주의를 복원한다는 자기모순에 빠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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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우리는 창의성과 다양성 대신 보편성과 평등을 사회정의라고 생각해 왔다 ②사회정의를 정부지출로 달성하려 했다 ③권리를 의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④정부의 역할은 과대평가됐다 ⑤시장의 약점은 지나치게 부각됐고 장점은 과소평가됐다…."
훗날 블레어 총리는 보수당이었던 전임 대처 총리와 행태가 똑같다는 조롱이 담긴 '가방 든 대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별명은 블레어 총리가 영국을 유럽에서 경제활력이 가장 넘치는 나라로 만들었다는 '개혁'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독일 자유베를린대학 박성조 교수)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이 진보인지 보수인지를 따지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 "요즘 빈곤층이 늘고 있는데 정부가 도와야 하나"라고 물으니 "물론"이라 했다 치자. 약자를 보호하자는 현상타파적 태도이므로 그는 진보다. 이번에는 "당신이 세금을 더 내서 그들을 도와야 하나"라고 물으니 "그건 싫다"고 했다 하자. 결과적으로 현상유지적 입장이므로 이번에는 보수가 된다. 이렇게 한 사람이 갖는 이념적 태도도 물어보는 방식과 각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번에는 이라크 파병, 노조 파업 등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차례로 입장을 들어 보자. 대개는 진보와 보수가 섞인 답변이 나온다. 세상일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개인.집단의 관심과 이해관계도 갈수록 다양해지는 이른바 다원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안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절대 보수'나 매사에 진보적인 '절대 진보'의 입장을 갖는 사람은 현실세계엔 거의 없다.
이제는 과거처럼 진보와 보수의 기준을 획일적으로 정할 수 없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중국적, 기업.은행의 해외매각, 외국인노동자 정책, 등은 진보.보수가 아닌 세계주의.민족주의의 기준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고정된 틀에 얽매인 진보와 보수의 주장이 대립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분단과 전쟁, 좌우의 극단적 대립, 냉전과 산업화 등을 거치면서 진보가 탄압받는 보수 일색의 사회가 되다 보니 진보.보수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조차 정리된 기준이 없는 상태다. 숭실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정치학.철학.사회학을 전공하는 교수들 사이에서도 합의된 일반적 기준이 없어 각자의 기준에 따라 보수.진보를 구분하다 보니 혼란이 증폭되는 측면이 있다"며 "교수들이 그러하니 학생과 일반인의 기준은 더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구와 한국 역사 속에서 보수와 진보가 어떻게 변화.발전해 왔는지를 이해해야 이를 현실세계에서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별취재팀=이하경 논설위원,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이세정 논설위원, 전영기 정치부 차장,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hakyung@joongang.co.kr>
2. 한국·서구 역사 속 이념
진보, 소련 붕괴 후 '체제 속으로'
혁명노선 버리고 선거.참여로 전환
보수-산업화, 진보-민주화에 기여
대한민국 건국에서 1987년까지는 보수의 시대였다. 진보 진영은 권력의 탄압에 의해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 그래서 보수는 자기를 보수라고 상대화할 필요조차 없었다.
해방(45년)에서 건국(48년)을 거쳐 전쟁(50년)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나라의 시스템을 사회주의 좌파 체제로 가져갈 것이냐, 자본주의 우파 체제로 가져갈 것이냐를 두고 동족 간에 죽고 죽이는 투쟁을 벌였다. 연세대 유석춘(사회학)교수는 "한국에서 진보가 인권.분배.평등을 선호했다면, 보수 세력은 안보.성장.경쟁의 가치를 중시했다"고 했다.
우파가 미국의 도움으로 승리한 뒤 좌파세력은 갈 곳이 없어졌다. 좌파는 빨갱이로 낙인찍혀 정치적.법적.사회적으로 제거되거나 우파.중도로 전향해야 했다. 혁신.진보 같은 용어도 좌파의 한 갈래로 위험시됐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걸맞은 '시장'을 창조하려는 우파의 노력이 이어졌다.
60년대 이후 외자를 활용한 우파의 경제개발 정책은 국민소득을 증대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해 시장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70년대에 경제.국방 분야의 체제 경쟁에서 한국은 북한을 눌렀다. 하지만 경제성장 쪽에 국가적 에너지가 집중된 나머지 민주화.인권.소득분배 같은 진보의 가치는 무시됐다. 기득권 세력이 반공을 권력 강화의 명분으로 악용하고, 정경유착으로 부패가 구조화돼 보수의 공정성과 도덕성에 상처가 나기도 했다.
보수주의 물결은 96년 총선과 97년 대선 때 절정에 달했다. 96년 총선 때 3김씨의 당은 '개혁 보수' '온건 보수' '원조 보수'논쟁을 벌일 정도로 정치시장에서 보수주의의 주가가 높았다. 97년 대선에서 색깔론 공격을 받던 김대중 후보는 보수주의자인 김종필 총재와 손을 잡고서야 겨우 집권에 성공했다.
진보가 모처럼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87년 6.10항쟁 이후다. 보수 일색이었던 한국 사회는 봇물처럼 터져 나온 민주화 욕구를 배경으로 보수와 진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6.10운동은 진보 세력의 저수지였다. 학생.노동.시민세력 등 여러 색깔의 반독재 민주화 세력이 이곳에 흘러들어 왔고, 전대협 같은 전투적인 학생운동과 경실련.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으로 상징되는 온건한 비정부조직(NGO) 시민운동 등 여러 갈래의 진보 노선이 이곳에서 흘러 나갔다.
그러던 중 사회주의의 종주국인 옛 소련이 89년 붕괴했다. 이 사건은 진보 진영의 영원한 테마인 혁명주의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혁명주의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북한과의 연대(민족해방파.NL)나 노동자 등 민중의 봉기(민중민주주의.PD)에 의해 뒤엎어 버리겠다는 과격 노선이었다.
혁명주의가 힘을 잃자 진보 진영은 '체제 내에서 변화를 추구한다'는 공통의 특징을 처음으로 나눠 가질 수 있게 됐다. 장기표씨와 김문수.이재오(한나라당 의원).노회찬(민주노동당 의원)씨 등이 92년 민중당을 창당한 것도 좌파 이념을 선거를 통해 추구한다는 체제 내 노선이었다. 이런 식으로 진보 진영은 정치.사회.문화 영역에서 더 규모가 커지고, 더 다양한 분야로 나눠졌다.
진보의 위력이 맹위를 떨친 것은 올해 총선 때였다. 진보 정당인 민주노동당은 득표율 13%의 지지와 10석의 의석을 얻었다. 스스로 좌파임을 천명한 민주노동당 강령은 반미와 반자본가 정신으로 가득차 있다. 민노당을 지지한 모든 유권자들이 강령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진보주의가 보수와 중도로 양분된 정치사회를 압박한 끝에 진보를 표방한 민노당의 국회 입성을 끌어낸 것만은 틀림없다.
미국과 자본주의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라고 생각해온 보수 세력에겐 충격이었다. 더구나 정통 보수주의 정당을 자임한 한나라당은 보수 정당 사상 처음으로 원내 1당의 지위를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에 넘겨줘야 했다. 열린우리당 의원의 86%는 자신의 성향을 진보 혹은 중도로 답변했다(중앙일보 4월 17일자 설문조사).
성공회대 조희연(사회학) 교수는 "진보세력은 그동안 도전과 변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민주화.다원성.개혁의 가치를 대중화했다"며 "반면 보수주의는 과거의 가치에 집착하는 바람에 진보와의 경쟁에서 뒤처졌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진보의 기세가 높지만 보수가 해온 역할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학을 전공한 김충남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연구위원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체제의 울타리를 치고(건국), 체제를 방어하고(전쟁), 체제에 내용을 채운(경제 성장) 국가건설(nation-building) 단계의 지도자"라며 "체제가 완성된 정상 국가의 가치기준으로 이들의 공로를 낮게 평가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유석춘 교수는 "보수가 이룩한 국가 건설과 산업화가 지금 보수. 진보가 공존하는 터전이 됐다는 점은 진보측도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하경 논설위원,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이세정 논설위원, 전영기 정치부 차장, 문경란 여성전문기자<hakyung@joongang.co.kr>
2. 한국 '진보' 용어 변화
주의자 → 좌파 → 혁신 → 변혁 → 진보
한국에서 진보라는 용어는 때와 상황에 따라 사회주의.좌파.자유주의.민주화운동.변화.진취.변혁.혁명 등 다양한 뜻과 어감을 지녔다. 보수-진보와 같이 이념구도의 한 축으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에서 이념구도의 양축은 보수(Conservative)-자유주의(Liberal) 혹은 공화당(Republican)-민주당(Democratic)이며, 유럽에선 주로 우파(Right)-좌파(Left)란 말을 쓴다. 한국에서처럼 이념의 성향을 표현하는 용어로 진보(Progressive)를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념의 용어들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경쟁하고 진화한다. 일제 땐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말 대신 그냥 '주의자'라는 표현이 쓰이곤 했다.
해방과 전쟁의 이념 격돌 시대엔 좌-우라는 말이 다른 비슷한 표현들을 압도했다. 좌우합작.좌우대립 등이 그 예다. 이승만 정권이 확고해지면서 좌파 말고도 혁신.진보라는 표현이 많이 나타났다. 좌파를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상황에선 완곡한 용어가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그래서 '혁신정당을 표방한 진보당'이 나왔다. 그러나 진보당 당수 조봉암은 1958년 처형되고 만다.
70~80년대는 단연 '반독재 민주화'가 저항세력의 슬로건이었다. 80~90년대엔 내용상 체제혁명을 의미하는 '변혁'도 유행했다. '진보'는 80년대 초반 비합법적 학생운동권의 표현공간이었던 대학신문들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89년 옛소련이 붕괴하고 학생.노동운동권에서 혁명주의가 사라지자 혁명.변혁보다 진보라는 말의 사용빈도가 높아졌다.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다양한 시민운동의 90년대를 거쳐 이념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는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진보가 비슷한 뜻의 다른 용어들을 제치고 단일화의 주인공이 됐다.
◇특별취재팀=이하경 논설위원,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이세정 논설위원, 전영기 정치부 차장,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2. 서구에서의 이념
보수가 '변화 거부'는 아니다
좌.우 처음엔 급진과 온건으로 구별
유럽과 미국에선 오래 전부터 좌파-우파라는 구분법을 널리 사용했다. 우파는 자주 '보수'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하지만 좌파와 '진보'(Progressive)는 우파와 보수의 관계만큼 친하지 않다.
좌우란 말은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국민공회(국회) 회의장의 의석 배치에서 비롯됐다. 가운데 의장석에서 볼 때 온건파인 지롱드당이 오른쪽에 앉았고, 급진파인 자코뱅당이 왼쪽에 앉았다. 그래서 최초의 좌우는 정치적으로 급진과 온건을 뜻하는 말로 각각 쓰였다.
이듬해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찰'이란 글로 좌파적.급진적 사고방식을 비판했다. 그는 파괴보다 보존, 이성보다 전통, 이상보다 현실을 중시했으며 변화는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인정하려 했다. 온건한 우파 입장이었던 셈인데, 변화 자체를 거부하거나 상층 계급의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제도개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의 의무)를 강조한 점에서 반동(反動)이나 수구(守舊)와 다르다.
1848년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전후해 좌우는 뜻이 더 풍부해졌다. 좌파엔 노동자 계급의 이념인 공산주의.사회주의에다 체제 전복(혁명)이란 내용이 첨가됐다. 우파와 보수주의는 자연히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념으로 이해됐다.
폭력혁명에 의한 소련 공산주의 국가의 성립(1917년)과 별도로 서유럽에선 사회주의의 이념을 비폭력적인 자유민주주의의 선거 수단으로 실현하겠다는 노동당(영국).사회당(프랑스).사회민주당(독일 등)이 나타났다. 이들은 혁명적이진 않지만 정부 개입에 의한 부의 재분배를 주장한다. 현대 세계 좌파의 중심 세력이다.
미국은 18세기 말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뒤 개별 주(州)들이 연방정부에 자신의 권한을 얼마나 넘길 것인가가 좌-우 혹은 보수주의-자유주의를 가르는 최초의 기준이었다. 연방정부의 권한과 개입을 되도록 작게 하자는 쪽이 보수주의.우파적 사고방식이다.
보수주의적인 공화당은 시장에서 정부 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한다. 자유주의적인 민주당은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와 교육, 의료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면 큰 정부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특별취재팀=이하경 논설위원,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이세정 논설위원, 전영기 정치부 차장,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3. 경제분야는 시장이 잣대
시장경제 내 개혁은 진보 아닌 보수
'시장이냐 정부개입이냐'가 판단 기준
소액주주 운동도 따지고 보면 보수
외환위기 이후 경제 분야에서 가장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해낸 시민단체로 참여연대가 꼽힌다. 참여연대는 기업의 투명성과 오너 경영체제의 부작용을 문제 삼으며 소액주주의 권익 되찾기를 주장했고,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재계에서는 '시장경제의 적(敵)'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2001년 5월 민병균 당시 자유기업원 원장은 '시장경제와 그 적들'이란 제목의 e-메일을 3만여명에게 보냈다. 자유기업원은 전경련 산하 기관으로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곳이다. 그는 이 글에서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추진한 경제개혁과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 등을 '좌경화'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진영인 민주노동당의 평가는 정반대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송태경 국장은 참여연대와 이를 이끄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신(新)보수'라고 잘라 말한다. 장 교수가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주주자본주의.금융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다.
외국의 시각은 또 다르다. 미국의 경제전문 통신인 블룸버그는 2002년 1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는 스탈린'이란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장 교수가 한국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함으로써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이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받는 현상)를 없애려 하고 있는데, 재계와 언론에서는 그를 스탈린에 비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앞서 미국 경제잡지 비즈니스 위크는 1998년 소액주주운동을 높이 평가하며 장 교수를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아시아 스타 50명 중 한명으로 뽑았다.
그렇다면 소액주주 운동과 장 교수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현상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보수고, 바꿔 나가자는 입장이 진보라고 본다면 장 교수는 진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경제전문가는 이런 구분보다 시장경제의 틀을 인정하느냐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게 옳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장 교수는 "소액주주운동은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강조한다. 이 틀에서 보면 시장경제 주창자라는 점을 강조하는 장 교수는 '보수'로 분류된다. 장 교수도 스스로를 시장경제를 위한 개혁주의자, 즉 개혁적 시장주의자 또는 보수적 개혁주의자로 분류하는 데 동의한다.
장 교수의 보수적 개혁이 진보로 혼동된 셈이다. 도대체 재계는 왜 장 교수를 적으로 여기는 것일까.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한국 재계가 공정한 시장경제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대기업들이 시장에서의 경쟁보다 정경유착 상태에서 성장해 왔고, 오너 전횡체제를 유지하려다 보니 제대로 된 시장이 등장하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잣대는 시장경제와 정부 개입에 대한 시각이다. 진보 쪽에서는 약자를 위한 분배와 복지 등을 중시하고 약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정부 개입을 주장한다. 보수 진영은 이에 대해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시장경제를 무시하는 주장이며, 이로 인해 사회 전체의 파이가 오히려 작아지게 된다고 비판한다. 보수 쪽에서도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시장경제의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부의 구호나 사회 안전망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좌승희 원장은 '사다리론(論)'으로 보수주의의 장점을 설명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 보통 사람보다 앞서 나가는 수직적 사다리 구조가 인간 사회의 본질이고, 시장경제가 이런 본질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사다리를 수평으로 놓자는 게 진보라고 그는 주장한다. 수직적 사고와 수평적 사고가 보수와 진보의 차이라는 얘기다.
진보 쪽의 주장 역시 분명하다. 민노당 송 국장은 시장경제가 분배의 왜곡을 불러오는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장경제론자들은 완전한 경쟁이 보장돼야 한다는 룰만 강조할 뿐 시장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변화, 그것도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더 나은 상태'로의 변화를 지향하는 것이 진보라고 규정한다. 더 나은 상태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이 나아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인다. 이를 위해 부자에게서 부유세를 걷자거나 정부가 사회복지 예산을 대폭 늘려 빈곤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경제 분야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이념은 경제적 자유(보수)와 분배의 평등(진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틀에서 보면 경제 분야에서 진보 쪽이라고 할 수 있는 세력은 크게 줄어든다. 변화를 추진하는 경우도 대부분 경제적 자유를 기본 전제로 하는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개혁을 하자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보수와 진보 내에서도 다시 각각 개혁적인 입장과 개량적인 세력으로 구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개혁은 곧 진보라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에 시장경제 내의 개혁도 진보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라며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하경 논설위원,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이세정 논설위원, 전영기 정치부 차장,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4. 절대기준은 없다(끝)
진보 - 보수는 도덕적 우열 기준 아니다
'정치 성향' 옛 잣대론 변화 못 담아
환경.여성.인권 등 다양한 틀 필요
"여성의 성을 착취하고 상품화하는 매매춘 합법화는 절대 허용해선 안 된다."(진보적 여성운동진영)
"매매춘은 필요악이므로 공창제를 해야 한다."(보수적 남성들)
"매매춘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노동권을 인정해야 하므로 합법화돼야 한다."(일부 급진적 여성운동가)
매매춘에 대한 보수적 남성과 진보적 여성운동 진영의 태도는 합법화와 반대로 상반된다. 그런데 좀더 급진적인 여성운동가들의 논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보수적 남성들의 입장과 외견상 같아져 버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한국의 경우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남북.한미관계에 대한 태도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결정적인 잣대의 구실을 해 왔다. 여기에 정부와 시장, 성장과 분배 중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하는가를 따지는 서구적 기준이 보완적으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원적 가치가 공존하는 다정체성의 시대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기존의 보수.진보 틀에 얽매일 경우 매매춘 합법화 여부에 대한 입장처럼 성격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과거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의제는 매매춘 합법화뿐만이 아니다.
스와핑, 교육행정 정보시스템(NEIS), 양심적 병역거부, 권력의 지방이양, 새만금 간척사업 등 다양하다. 이른바 '삶의 정치'에 관한 것들이다. 그래서 진보.보수의 기준도 이제는 다층적.다원적일 필요가 있다.
성공회대 조희연(사회학)교수는 정치적.경제적.생활세계적 차원의 3차원으로 나눠볼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분류하면 한 개인에게서 나타나는 진보 또는 보수의 불일치가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
예컨대 학창시절 반독재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지만 지금의 안정된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대기업 중견간부 김석우(42.서울 서초동)씨의 경우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진보적이지만 경제적.생활세계적 이슈에 대해서는 보수적이다. 전통적인 구분법으로 보자면 일관성이 없는 것 같지만 다차원적 접근법으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환경.생태.여성.평화.양성평등.소수자 인권 문제와 같은 생활세계적 이슈가 떠오르면서 정치적 이슈들이 새롭게 해석되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4월 22일의 북한 용천 폭발사고 이후 활발하게 펼쳐졌던 대북지원이 대표적 사례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퍼주기'라고 비난하고 대북지원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 등 지도부를 중심으로 용천 주민 돕기에 적극적이었고, 이례적으로 '북한 정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성공회대 손혁재(NGO학)교수는 "이념이란 잣대에 얽매이기보다 인류애적 관점에서 북한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으로 여기는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며 "용천 사태는 보수진영이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적절히 받아들인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에서도 비슷한 성격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운동에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반대하고 민족자주권을 수호한다는 민족주의적 정서가 깔려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평화운동이자 국민.국가를 넘어 이라크 국민의 인권유린에 저항하는 세계시민론적 대응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다원적 가치가 확대되면서 보수와 진보의 판단 기준이 실험대에 오르는 일도 생기고 있다.
20세기 서구의 진보진영은 이혼을 지지했고, 보수는 반대했다. 그런데 '제3의 길'로 유명한 영국의 진보적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자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이혼을 결정하는 것은 자녀가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친구를 만날 기회를 봉쇄한다는 점에서 이혼을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엔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인지 헷갈리게 된다.
중앙대 이원영(유아교육학)교수는 "한국에서도 이혼 결정 전에 자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그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한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생활세계적 이슈에 대한 진보.보수 진영의 대응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진보진영은 다원적 입장을 지지하고, 보수진영은 공동체주의를 지지한다. 누가 도덕적으로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다만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가 다를 뿐이다.
결국 두 진영의 미래는 누가 더 설득력있는 논리를 제시해 다수를 끌어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조 교수는 "중요한 것은 한 사람 내에도 여러 생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인정하자는 것"이라며 "보수와 진보의 공존과 이해, 상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이하경 논설위원,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이세정 논설위원, 전영기 정치부 차장,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4. 김호기 연세대 교수
"진보 - 보수 이분법만으론 곤란…세계주의 - 민족주의도 새 기준"
우리 사회에서 보수.중도.진보를 구분하는 기준은 서구 사회와 사뭇 다르다. 서구의 경우 정부와 시장, 성장과 분배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이냐가 그 핵심 기준이라면, 우리의 경우에는 한.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어떻게 볼 것이냐가 주요 기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기존의 이념구도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먼저 남북관계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영향력이 줄어든 반면 정부와 시장, 성장과 분배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양성평등.생태보호 등 생활정치에서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구분이 갈수록 비중을 더하고 있다. 대체로 보수주의는 시장.성장.전통을 중시한다면 진보주의는 정부.분배.변화에 무게중심을 두며, 중도주의는 절충을 모색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화의 충격이다. 세계화는 민족주의에 맞서는 보편주의를 강조함으로써 기존 보수.중도.진보의 이념구도를 다시 양분해 왔다. 문제가 간단치 않은 것은 세계주의의 이중성이다. 그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지구적 민주주의를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서구 중심적인 가치와 미국 주도의 패권주의를 강조하기도 한다. 예컨대 시장 개방과 노동의 유연화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동의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에서 정답은 없는 셈이다.
우리 사회 주요 단체들을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념지도에 위치시켜 봤다. 가로축이 전통적인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구분에 따른 것이라면, 세로축은 새롭게 부상한 세계주의와 민족주의의 구분에 따른 것이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세계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는 중도주의가 위치해 있다.
이 이념구도가 함축하는 바는 두가지다. 첫째, 우리의 이념지도는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으로만 파악할 수 없다. 오늘날 이념지형은 여러 기준이 교차함으로써 복합구도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 이념 간의 생산적인 긴장이 요구된다. 다양성과 복합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사회에서 이념적 왕도(王道)란 없다. 따라서 이념 간, 정책 간의 생산적인 토론과 경쟁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특별취재팀 = 이하경 논설위원,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이세정 논설위원, 전영기 정치부 차장,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4. 정당 '이념' 분명히 밝히면
지연·정쟁 벗어나 정책 경쟁 활성화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많은 사람은 '지역'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다. 노태우(민정당.대구경북 출신).김영삼(통일민주당.부산경남).김대중(평민당.호남권).김종필(신민주공화당.충청권)후보는 각기 출신 지역의 유권자에게서 각각 68%, 54%, 88%, 35%의 몰표를 받았다. 상당수 유권자는 후보와 정당의 정책보다 출신 지역을 중요하게 봤던 셈이다.
선거 결과로만 볼 때 이런 지역주의적 사고방식은 지난 4.15 총선을 계기로 변화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념'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이 그걸 뒷받침한다.
이념적 사고는 지나치면 좌우 대립 같은 증오의 투쟁을 부르지만 합리적인 경쟁 공간에선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고려대 이내영(정치학)교수는 "지연(地緣)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풍토에선 정당들이 집권 후 어떤 비전으로 정책을 시행할지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며 "정당이 합리적인 정책 경쟁에 나서고 유권자들이 지역 이외의 요소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기 위해서는 정당이 보수든 진보든 자기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서적 요인이나 친소 관계가 지배하는 사회를 생각과 이성적 판단이 존중받는 사회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후보나 정당이 이념을 스스로 드러내면 유권자들은 그만큼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 '보수적'인 공화당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줄이는 게 기본 정책인 반면 '자유주의적'인 민주당은 복지제도를 강화하고 정부의 역할을 중시한다. 정당의 정책적.이념적 색깔이 이처럼 뚜렷하기 때문에 유권자는 당 소속 후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숭실대 강원택(정치학)교수는 이를 '정보획득 비용의 절감효과'라고 불렀다.
생산적인 토론은 생각의 차이에서 공통의 이해를 끌어낸다. 생각의 차이를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알리는 데서 공존의 실마리가 찾아진다. 시사적인 토론을 하는 사람들도 이념성향을 적절히 공개함으로써 폭넓고 효과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다만 이념 때문에 여러 차례 비극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선 솔직한 성향 공개를 부담스러워 하는 문화가 문제다.
연세대 유석춘(사회학)교수는 "영향력 있는 정치가나 학자들이 시대와 상황 변화에 따라 언행이 다르거나, 자기 성향과 다른 견해를 주장하는 등 이중적인 면이 적지 않았다"며 "이런 일들이 쌓이면 불신이 깊어지고, 차이에서 공통성을 이끌어낸다는 이념의 긍정적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인이나 공당이 정책.성향.이념에 변화가 생겼다면 이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변화 이유를 설명하는 게 필요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특별취재팀 = 이하경 논설위원,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이세정 논설위원, 전영기 정치부 차장,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이슈기획 진보랑 보수랑] 영국 하원 만델슨 의원 강연
"낡은 이념 벗어야 사회 건강"
"낡은 우파, 낡은 좌파의 이념에 얽매이다가는 문명화된 시민사회를 이루지 못합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측근이자 '제3의 길' 사상의 이론가인 피터 만델슨 영국 하원의원. 그는 "좌파나 우파의 어느 한쪽 이념이 압도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도 올바른 사회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9일 경희대 NGO 대학원의 특별강연과 조인원 NGO 대학원장과의 대담에서다. 그는 '신좌파'를 표방하는 영국 노동당 정권의 정책노선과 이념에 대한 태도를 설명했다.
좌파의 평등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우파가 강조하는 개인의 창의성과 시장의 번영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의 핵심이었다. 그는 "이를 위해 전통적인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훤칠한 키에 이지적 풍모의 만델슨 의원은 '시장의 역할'과 '공공적 통제'를 둘 다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문명화된 사회를 이루려면 효율적인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존재해야 한다"며 "정책을 통한 적절한 통제도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그의 연설은 '문명화된 사회(Civil Society)'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됐다. 그는 "빈민 등 소외계층을 사회 전체가 돕는 게 문명화된 사회의 요체"라며 "이는 한 나라에서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통용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만델슨 의원은 이런 사회를 이루기 위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소외된 계층을 효과적으로 도우려면 효율적인 시장경제를 통한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남는 게 있어야 누구든 도울 수 있지 않느냐는 얘기다. 전통적 좌파 정권의 폐해로 지적돼 온 복지국가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법을 강조했다. 만델슨 의원은 "좌우 이념을 극복한 '제3의 길' 방식의 새로운 복지국가 개념이 필요하다"며 "실업자들에게 그저 실업수당을 주는 것은 진정한 복지가 아니다. 실업자들에게 돈이 아니라 직업교육을 시킴으로써 일자리를 찾아주는 게 새로운 복지"라고 소개했다. 또 "일자리를 찾아주기 위해선 시장의 물질적 번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제3의 길'의 교육은 획일화된 노동력을 만드는 공장형 교육이어선 안 된다"며 "개인의 창의를 개발하고 특성에 맞추는 맞춤형 교육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블레어 총리 친서 전달=만델슨 의원은 이번에도 블레어 총리가 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지난달 28일 청와대에 전달했다.
블레어 총리는 친서에서 김선일씨 피살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델슨 의원은 30일 오전 노 대통령을 예방했으며 이날 오후 출국했다.
남정호 기자
<출처>
중앙일보 이슈기획 http://www.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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