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 말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고들 한다. 그런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을지 몰라도 권력과 재벌의 씨는 여전히 따로 있다.

아무나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고 아무나 재벌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한국 100대 부자들 한 집 건너면 인척 .. <열기>



우리가 날마다 일상에서 보고 듣는 수많은 불협화음의 소리는 그 근본을 따지고 보면 결국은 모두 권력과 비권력, 재벌과 비재벌간에 빚어지고 있는 다툼의 소리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싸움은 권력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벌이는 것도 아니고 돈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벌이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다만 구경하고 때로는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는 극명한 투쟁의 저 현장을 살아가고 있지만 기실 싸움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그 사이에 펼쳐져 있는 다종 다양한 스펙트럼.
돈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그 사이에 펼쳐져 있는 숱한 군상들의 스펙트럼.


싸움은 저 스펙트럼 위의 군상, 곧 우리들이 수행한다. 그러나 싸움의 수혜자는 결코 싸움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우리들이 아니다. 저 싸움에서 우리는 결코 싸움의 주체가 아니다. 다만 꼭두각시일 뿐이다.

이 꼭두각시들은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느 꼭두각시가 아니다.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자신이 도무지 꼭두각시인 줄을 모르고 있는 꼭두각시인 때문이다.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이면서도 우리는 자신을 너무 자주 주체적이라 여긴다.
"나는 주체적으로 활동해."
"나는 꼭두각시가 아니야."
"나는 충분히 깨어 있는 사람이야."


수동적인 싸움과 능동적인 싸움은 그 치열함의 정도가 다르다. 다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깨어 있음에서 비롯되는 싸움은 기꺼이 자신을 걸고 싸울 수 있다. 우리의 비극은, 그리고 저 싸움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싸움을 지켜보며 미소짓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웃으면서 싸움을 구경하고 또 때로는 싸움을 부추긴다. 불쌍한 꼭두각시들. 나는 오늘도 기꺼이 그리고 어김없이 불쌍한 꼭두각시가 된다.



<덧붙이는 글>
돈도 안 되는 사이트를 하나 만드느라 밤을 꼬박 새워버렸다. 그 핑계로 월드컵 축구 경기는 다 봤다. -_- 담배 한 대 피우려고 옥상을 올라갔더니,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 공사장에서는 벌써부터 철근 내리는 소리 망치 소리가 한창이다. 이웃집 여학생은 상큼한 옷매무새로 등교를 위해 종종걸음이다. 이대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잠시라도 눈을 붙일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견디기로 한다. 힘든 하루가 될 성싶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려고(?) 문득 올려보는 글이다.
TAGS 행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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