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유명한 사회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글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그는 F.A. 하이에크와 더불어
전체주의의 확산을 막고 자유사회의 번영에 크게 기여한 인물입니다. 그가 1992년
스페인 세비야 엑스포에서 행한 연설 '과거를 이해해야 미래를 바꿀 수 있다'에서
중요한 대목을 뽑아서 보내드립니다.

<출처> 내 메일 - 본 메일은 공병호경영연구소에서 보낸 발신전용 메일입니다.


1. 내가 어떻게 해서 1919년 7월 28일 17번째 생일을 앞두고 일생에 걸친 마르크시즘
반대론자로 전행하게 됐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부모님은 1차대전 전부터
강력한 반전주의자였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는 임마뉴엘 칸트와 빌헬름 폰 홈볼트, 존
스튜어트 밀 등에서 영향을 받은, 진보적이고 매우 학구적인 변호사였다. 전쟁 당시
열 넷인가 열다섯이었던 나는 어느 날 빈의 구텐베르크 동상 뒤쪽의 길을 걷다가,
정치적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생각을 문득하게 되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민주주의는 결코 진정으로 안착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일단 자유가 정착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시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러면 자유는
곧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잃는 게 어떤 것인지, 테러리즘이나 전쟁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를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 즈음 나는 '평화주의 정당'이라고 선전하고 다니는 공산당에 조금씩
매료되고 있었다.


2. 이제 마르크시즘의 사상과 덫을 설명하고, 내가 어떤 끔찍한 경험으로 충격을 받아
그것에서 탈출했는지 이야기해보겠다. 지금까지 봤을 때 마르크스 이론, 혹은
마르크스 사상에서 가장 설득력을 갖는 측면은, 그것이 절대적인 과학적 확실성을
가지고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역사이론'이라는 주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뉴턴 이론이 일식을 예측했듯 마르크시즘은 사회 혁명 단계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이론의 기본을 이루는 관념은 이것이다.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3. 마르크스는 1847년 <철학의 빈곤>의 마지막 몇 장에서, 계급투쟁이 사회혁명을
초래하여 이어서 무계급 사회 또는 공산주의 사회가 마땅히 뒤따른다고 처음으로
주장했다. 논거는 아주 간단했다. 노동자 계급이 유일하게 남은 피지배 계급이자 유일한
생산계급인데 절대 다수가 속한 계급이기도 하므로 반드시 승리할 수 밖에 없다.
혁명에서 노동자 계급의 승리는 다른 모든 계급을 소멸시키고, 따라서 단 하나의 계급만
존재하는 사회를 만든다. 그런데 단일계급 사회는 곧 무계급 사회, 지배계급도
피지배계급도 없는 사회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년 후 <공산당 선언>에서
선언한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4.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기에, 무계급 사회는 역사의 종언을 의미한다.
더 이상 전쟁은 없고 더 이상의 투쟁도 없으며, 폭력도, 억압도 없다. 국가권력도
쇠퇴한다. 종교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이 땅에 천국이 도래하는 것이다.
반대로
현존하는 사회,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라고 칭한 사회는 그가 보기에 자본가들이 절대
지배 권력을 가진 사회읻이다. 한 마디로 계급독재인 것이다.


5. 1919년 6월 비무장 데모데가 거리에서 경찰의 발포로 몇 사람이 죽는 사건이 발생
하였을 때, ... 나는 내가 마르크스주의로 권유한 사람들이 죽음을 보면서 나의
이념을 위해 내 목숨을 걸 자유는 있지만 내가 믿는 이념을 위해 남의 목숨을 걸도록
종용할 권리는 없다고. 진설성에 충분히 의심이 가는 마르크스 사상을 위해서라면
더욱 안 될 일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한번이라도 마르크스 이론을 진지하게
비판적으로 검토해 본 적이 있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대답이 '노'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마르크시즘의 덫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나는 철저하게 비판적인 태도로 마르크시즘 연구에 착수했다. 여러가지
이유로-가장 큰 이유는 파시즘을 부추기고 싶지 않아서였다.-그 연구 결과를 26년이
지나서야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 발표하게 되었다.


6. 내가 얻은 명백한 결론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주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사실 마르크스가 알았던 사회는 위대하고도 진실로 놀라운 혁명을 여러
차례 거쳤다. 수백만 남녀 노동자가 감내해야 했던 살인적이고 끔찍한 강도의
노동은 우리 서구 국가들에게 사라졌다. 나는 그 시절의 노동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직접 목격했다. 종합 해 볼 때 마르크스가 예견한 상황의 정반대 결과가 일어났다.

7. 나는 역사학자로서 말하건대, 나는 우리가 사는 열린사회가 역사상 가장 좋은 사회,
가장 공정한 사회라고 본다. 분명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사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사회를 계속해서 그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오도할 이유가 없다.

8. 역사는 여기에서 멈춘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수는 있다. 그러나 미래는 과거의
연장이 아니며 과거로부터 추정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책임은 바로 우리가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미래를 더 나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렇게
하려면 과거로부터 학습한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하는데, 우리가 배웠어야 마땅한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바로 '겸손'이다.


(My opinion:공식적으로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마르크스주의는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이 왜, 그런 사상에 빠질 수 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여전히 그런
사상적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정치, 노동, 교육, 시민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일부는 여전히 '이론 사회주의는 갔지만 현실 사회주의는
살아있다'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듯 합니다. 이런 문제는 근래에 북한에 대한 태도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지요. 과거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마르크시즘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우리사회를 생각하면서 글을 옮겨 보았습니다.)
-출처: 칼 포퍼,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부글), 2006.


"우리가 정치적 자유를 갈구하는 이유는, 더 쉬운 삶을 소망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 자체가 물질적 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궁극적 가치를 갖기 때문이어야 한다.
우리는 정치적 자유가 이것 또는 저것을 약속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이 유일하게 고귀한 형태의 인류 공존,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백퍼센트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공존을 가능하기 하기에 그것을 택한다.
우리가 그 가능성을 깨닫느냐 마느냐는 수많은 요소에 달려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칼 포퍼의 글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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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나가던이 2007/01/25 00:11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글쎄, 마르크스가 알았던 사회가 그런 개혁을 거칠 수 있었던건 마르크스의 영향도 상당히 존재한다고 봅니다만.. 의료보험, 실업급여 등의 복지제도가 존재할 수 있었던게 좌파의 직접적인
    영향도 있고 마르크스가 생각한 대로의 세상이 오는걸 두려워한 서구 정부가 어느정도 계속
    손을 썼기 때문이기도 하죠. 마르크스 = 공산주의라고만 보기도 어렵다는 봅니다. 90년에 무너진 현실 공산주의가 마르크스등으로 시작된 근대좌파의 적통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고
    보고요. 물론 당사자들은 그렇다고 보겠지만 그 나라들의 성립과정과 지도자들의 면면을 보면
    꼭 그렇다고 말할수도..

    제 기준엔
    닫힌사회 : 사회주의 - 현실 공산주의(특히 스탈린 집권시대의 소련 등)
    자본주의 - 파시즘(무솔리니,히틀러,프랑코 등등)
    열린사회 : 사회주의 - 북구등..
    자본주의 - 서구등...

    뭐, 열려보이는 사회가 꼭 포퍼가 말한 열린사회라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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