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왜 영화 <디 아더스>를 떠올렸을까?

지난 30일 방송된 일산의 여자아이 납치 CCTV 동영상을 보면서 뜬금없이 몇 년 전에 본 영화 <디 아더스>가 떠올랐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났을 때처럼 가슴 한구석이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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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지난 2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입니다. 한 여자아이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고 점퍼 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40대 남자가 따라탄 뒤 아이를 끄집어 내려고 합니다. 아이가 반항하자 흉기를 들이대며 발길질을 퍼붓고 주먹질까지 합니다.
남자는 3층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이번엔 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강제로 끌어내려 합니다. 아이는 엘리베이터 안전 손잡이를 잡고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쳤지만 결국 신발 한 짝이 벗겨진 채 바닥에 나뒹굴며 끌려나가고 맙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누군지도 모를 어른한테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고 발길질을 당하다 끝내 신발 한 짝을 엘리베이터에 남기고 강제로 끌려나가는 아이를 보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건 안타깝다는, 혹은 안쓰럽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지켜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CCTV 영상을 보며 영화 <디 아더스>를 떠올렸던 건 아마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생생히 전달되는 아이의 아픔(어이없는.. 황당한.. 배신감.. 믿음)과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움, 지켜주지 못한 데서 오는 죄책감 등이 어우러져 불러일으킨. 


영화 <디 아더스>

영화 <디 아더스>

영화 <미스트>

영화 <미스트>


며칠 전 블로그에서 영화 <미스트> 얘기를 잠깐 한 적이 있다. 횡발수발하다 얘기가 끝나고 말았지만, 영화 <미스트>를 굳이 감상까지 적어 올린 것도 <미스트>를 보고나서 받은 느낌이 저 CCTV 납치 영상이나 영화 <디 아더스>를 보면서 느낀 감정과 크게 멀리 있지 않아서였다.

영화 <디 아더스>에서 니콜 키드먼과 그 아이들이 보여주는 아픔의 깊이만큼은 아니지만(영화를 보지 못한 분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함), 영화 <미스트>에서도 가장 아픈 대목은 역시 아이와 아버지의 대화 부분이었다. "아빠, 약속 하나만 해줘.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지켜주겠다고. 반드시 지켜줘야 해."

아이에게 부모는 곧 '세상' 그 자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부모에만 한정된 얘기일까? 아이에게는 이 세상 모든 어른이 실은 세상의 전부가 아닐까? 그렇기에 이번과 같은 일을 볼 때마다 불편해진다. 그 순간에 아이가 받았을 당혹감 혹은 절망감이 그대로 전해져와서다. <통신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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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나다다 2008/04/02 00:19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미스트를 뒤꾸녕으로 띄엄띄엄 봤지만............................ 정말 기분이 더러워지는 영화였다. 영화가 거지 같은지 어떤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스토리가....아주...지랄이라서...기분이 더러워지는...

    그리고 보면 애들이 죽거나 다치는 장면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던 헐리우드 영화 에서도 예전의 금기를 깨는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람보를 보면 애들을 불에다 집어 던지지 않나...아주 막나가는 장면이 쑤두룩 하게 나오기도 하고...

    • 하민혁 2008/04/02 01:00  편집/삭제  댓글 주소

      어쩌다 보니, 며칠 사이에 미스트 얘기를 두번이나 했는데요. 영화에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면, 혹은 아이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절대적인 신뢰와 거기서 빚어지는 이야기 구조가 없었다면 이 영화를 그렇게 인상적으로 담아두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님의 말 마따나, 보고나서 '기분이 더러워졌던' 것도 실은 그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때문이었으니까요. 물론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암튼, 영화든 뭐든.. 아이를 동원하여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는 별로여 합니다. 별로인 정도를 넘어 상당한 거부감을 가질 때가 많지요. 시위 현장 등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거나, 그것도 모자라서 머리띠까지 두르게 하는 어른들에게 내가 자주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구요.

  4. 포니 2008/04/02 01:2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아이 엄마라서 그런지,
    저런 기사를 접할때 마다 가슴이 철렁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마음이 아픕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언제든지 내 아이가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공포까지 느끼게 되더군요.
    집에서 50미터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슈퍼에도 혼자서 못보내겠고, 그러면서 이렇게 과보호를 하면 마마걸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또 다른 걱정이 들구요..

    언제쯤이면 내 아이가, 우리의 아이들이 마음놓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올까요.

    • 하민혁 2008/04/02 03:49  편집/삭제  댓글 주소

      이번처럼 경찰이 '이 정도 사건은 신경 쓸 꺼리도 안 된다'는 의식으로 꽉 차 있는 한,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오리라 기대하기란 힘든 일일 것같아요. 오래도록 타성에 젖은 그 행태가 누가 뭐라 한다고 해서 쉬이 변할 것같지도 않구요.

      이 글을 쓰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거나 혹은 '저래야 한다'는 등의 얘기를 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아무리 떠들어봤자, 떠드는 입만 아프지.. 결국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갈 일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지요. -_

      암튼, 저 아이가 받았을 놀람 충격 등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네요. 아~ 그래서 말인데요. 아픈 건.. 아이 엄마만이 아니고 아이 아빠도 그렇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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