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관점에서 한국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며 우리의 성취는 진정 경이로운 것이다. 그러나 4대 초강대국이 직접 대치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지정학과 지경학(地經學)에서 미래의 통일한국조차 중강국(中强國·middle power) 이상은 될 수 없으며, 될 필요도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게 냉정한 국가전략의 출발점이 아닐까?"

윤평중의 시론 '더 큰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려면 마지막 단락 일부다. 시류에 야합하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글들이 시론이요 칼럼이라는 이름을 달고 목소리를 높이는 최근의 시류에서 간만에 보는 제대로 된 글이 아닌가싶다. 이같은 글은 객관적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이는 나오지 않는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상황인식이다.

"우리에게 거의 운명과도 같았던 대륙국가 중국의 힘을 상쇄한 해양국가 미국의 출현은 한반도에는 참으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우리가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인 지난 60여년은 2000년이 넘는 중국의 대(對) 한반도 영향사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60년은 한국시민의 주체적 역량을 폭발시켜 한반도 남쪽에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꽃피게 한 한국혁명(Korean Revolution)을 가능케 했다. 민주주의와 시장을 알지 못했던 대륙국가 중국과 소련의 모델을 이식한 북한이 해체위기에 처한 것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한반도 현대사에 대해 각자가 호오(好惡)의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명백한 사실 관계를 부정하는 가치판단은 허망하기 마련이다."

지난 세기의 60년을 2000년을 이어온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전환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나아가 그것을 주장한다는 것은 대중영합이 판을 치는 최근의 시류에서는 자칫 돌팔매질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글쓴이가 적고 있는 그대로 이는 '명백한 사실관계'다. 그럼에도 그것을 인정하면 마치 자신이 시대에 뒤떨어진 이나 되는 것처럼, 대부분의 논객들이 이같이 명백한 사실관계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비겁한 자세고 바람직하지 않은 풍토다. 실제로 지금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는 문제들이라는 건 이같은 사실관계만 명확히 해도 문제조차 되지 않을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TAGS 윤평중

Trackback URL : http://blog.mintong.org/trackback/720

Trackback RSS : http://blog.mintong.org/rss/trackback/720

Trackback ATOM : http://blog.mintong.org/atom/trackback/720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

  1. Comment RSS : http://blog.mintong.org/rss/comment/720
  2. Comment ATOM : http://blog.mintong.org/atom/comment/720
  3. 사리 2009/10/07 20:49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rss로 구독하고 있었는데,
    추천이라도 할려고 들렀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2000년이 넘는 중국의 대(對) 한반도 영향사" 이 부분..
    마치 있는 현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갑자기 환기되는 느낌입니다.

    • 하민혁 2009/10/07 21:50  편집/삭제  댓글 주소

      네, 우리는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너무 인색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목전에 때려잡아야 할 적을 상정하고 오로지 거기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요

      지나가다 잠깐 전한 생각에 공감을 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

  4. 돌팔매 2009/10/08 17:53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명백한 사실관계라.....
    명백한 사실관계....

    예를 들어,
    "1945년 12월 16~5일 소련 수도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 3국의 외상들이 회의를 열고 ‘모스크바협정’(Moskva Agreement)을 발표하였는데 이에 의하면 한국에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정기간의 신탁통치에 관하여 협의하기로 하였다."

    라는 진술은 명백한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인 지난 60여년은 2000년이 넘는 중국의 대(對) 한반도 영향사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60년은 한국시민의 주체적 역량을 폭발시켜 한반도 남쪽에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꽃피게 한 한국혁명(Korean Revolution)을 가능케 했다. 민주주의와 시장을 알지 못했던 대륙국가 중국과 소련의 모델을 이식한 북한이 해체위기에 처한 것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라는 진술은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한반도 현대사에 대해 각자가 가진 호오(好惡)의 가치판단에 기초한 평가적 진술입니다.

    특정한 진술이나 주장이 개인의 사고체계내에서는 매우 정합적인 주장이나 진술로 인식될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하여 본인이 인식한 정합도의 정도에 따라서
    평가적 진술이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로 탈바꿈할 수는 없습니다.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 적절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운평중이 적절치 못한 의견을 개진한 면이 있으나
    이를 면밀하게 확인하지 않고 따온것도 허물이 적지 않습니다.
    그저 어떤 어구나 문구가 마음에 든다고 성급하게 인용해 오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요.

    참고로 책 한권 소개합니다.

    John Lukacs, Student's Guide to the Study of History,ISI Books, 2000.

    루카스는 미국 공화당의 대표적인 브레인이고 ISI는 미국 보수의 싱크탱크로
    제법 훌륭한 책들을 문고판으로 저렴하게 내기를 자주 합니다.
    쥔장의 취향에 크게 벗어나진 않을겝니다.
    역사 연구에 대한 대강의 맥을 짚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평가를 구별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정진을 빕니다.

  5. binnamoo 2009/10/08 15:48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윤평중 시론은 이메일로 받아보고 있는데요...
    저도 이 글에 맘이 끌려서 별도로 소식지(월간)에 실으려고 합니다. ^^
    게재허락은 전에 받아두었습니다.

    지금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지역성에 근거한 전략적인 사고라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전략적인 사고를 적극적으로 해야할 시기같습니다.

    • 하민혁 2009/10/11 00:44  편집/삭제  댓글 주소

      어제 글에서 저는 "사다리를 먼저 오른 이가 보고 짚어주는 숲은 그리되 그 나무는 간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했는데요 관점만 다를 뿐 문제의식은 같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충분한 깊이와 너비는 무시한 채 너무 현상에만 치중해 있는 것 아니냐는 점에서요 의견 고맙습니다

: 1 : ... 136 : 137 : 138 : 139 : 140 : 141 : 142 : 143 : 144 : ... 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