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이라는 소설이 있다. 198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다음은 네이버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이 소설의 줄거리다

핵전쟁의 위험을 느낀 영국은 25명의 어린 소년들을 핵전쟁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로 옮기려 했으나 소년들을 태운 비행기가 그만 바다에 추락한다. 부상당한 조종사와 랠프·잭·피기 등의 소년들은 무인도에 상륙한다. 이들은 구조를 기다리며 랠프의 지휘에 따라 조종사를 보살피고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구조되려면 바닷가에 오두막을 지어야 한다는 랠프와 사냥을 강조하는 잭은 사사건건 대립하고, 결국 잭과 로저는 갱단을 만들어 무리를 이탈한다. 짐승을 찾아나선 사이먼이 잭 일당에게 살해되고, 섬에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소년들은 안전을 위해 잭의 갱단으로 들어가고 결국 랠프와 피기만 남는다.

문명세계의 사회관습은 붕괴되고, 인간 본성에 잠재한 권력욕과 야만성이 드러나 섬은 지옥으로 변한다. 광기에 찬 잭과 로저는 점점 더 포악해지고 피기마저 죽임을 당한다.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랠프와 소년들은 가까스로 영국 순양함에 의해 구조된다.
 
  
우리가 만일 저 소설 속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느쪽에 서게 될까?

사람들은 자주 박정희를 이야기한다. 비판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당게판에서도 가끔 박정희를 비판하는 분이 있다.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소설에 빗대어 단순화한다면, 박정희가 바로 '잭'의 위치에 섰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터닝포인트는 사이먼이 죽는 부분이다.
보다 정확히는, 사이먼의 죽음을 통해 ' 섬에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대목이다.

박정희는 군중을 다스릴 줄 알았다. 소설 속의 잭처럼. 박정희는 끊임없이 '소문'을 만들어냈고, 그 소문이 두려워서 군중은 박정희에게 순치되어갔다. 박정희나 잭이나 둘 모두 그것이 '필요악'임을 내세웠다(중략). 그러나 모든 군중이 그 소문에 순응하는 것은 아니다. 소문의 진실성에 회의하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박정희가 기초한 것이 제4공화국 헌법, 즉 우리가 '유신헌법'으로 알고 있는 바로 그 헌법이다. 유신헌법이 비난 받는 이유는 여러가지(과정상-내용상)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헌법상에 있는 '긴급조치 조항(제53조)'은 대표적인 비판 대상이다. 이 조항은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막고 사고와 행동까지를 제약하는 유신헌법의 독소조항이다.

다음은 제4공화국 헌법상의 긴급조치 조항(제53조)이다
① 대통령은 천재 ·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 ·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 ·외교 ·국방 ·경제 ·재정 ·사법(司法)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② 대통령은 제1항의 경우에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③ 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를 한 때에는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④ 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는 사법적(司法的)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⑤ 긴급조치의 원인이 소멸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⑥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긴급조치의 해제를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으며,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
 
이 긴급조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당시 유신체제에 저항하던 국민들을 탄압하는 데 활용되었다.

당게판을 정화할 필요가 있다는 당원들의 목소리가 높다. 나 또한 그 주장이 나오고 있는 배경에는 공감을 표한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에서 나는 당게판 폐쇄 주장에 반대한다.

첫째, 지금 당게판의 문제로 꼽고 있는 '당게판 황폐화' 문제는 엄밀하게 말해 당게판의 문제가 아니라 당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게판을 없애거나 옮긴다고 해서 해소되거나 사그라질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둘째, 게시판은 자체적인 정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때문이다. 게시판이 정화 기능을 갖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게시물 자체가 하나의 공개적인 기록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당게판에서 몇 가지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해온 것은 그것이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내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어서다. 지금 당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누가 뭐를 어쨌다더라' 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누군가'에게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를 못 하다.

소문을 들은 반응은 이내 '글마 나쁜 넘이네'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같은 방식으로 확대재생산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두가 믿는 '사실 아닌 사실'이 되어버린다. 당사자는 변명 한번 못 해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하의 나쁜 넘'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당원간 반목 및 당내 분란이 일어나고 있는 방식이다. 이건 정상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당사자에게 한번 확인만 해도 금세 확인될 일이 그렇게 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소문이 유통되는 통로 자체가 이해관계에 따른 사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적인 통로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당게판을 폐쇄하자니..

목전의 이익을 구하기 위해, 혹은 목전의 유용함을 위해 더 큰 것을 잃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고 해서, 바르지 않은 일에 동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제안] 당게시판을 지키기 위해 게시판 폐쇄를 제안합니다
[동의] 당을 죽이고 있는 게시판 당분간 패쇄합시다
[결정] 다수의 폐쇄 동의를 받아들여 게시판의 한시적 폐쇄 안건을 수렴하겠읍니다

 
하지만 아는가? '긴급조치'를 포함하고 있는 유신헌법은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찬성(91.5 %)으로 확정되었으며, 대통령 취임일에 전 국민의 경하를 받으며 공포·시행되었다는 사실을. <2004-03-02>




<덧붙이는글> 참고로, 당을 살리기 위해 당게판 폐쇄가 불가피하다고 부르대던 이들은 당게판 폐쇄 후 같은 논리로 곧 당 홈페이지를 폐쇄해버렸다. 그런 다음 그들이 비판하던 이들과 함께 당 자체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저들이 필요로 한 것은 당 그 자체 혹은 당의 정신이 아니었다. 그 정신이 새겨진 간판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사적인 영달을 위해 그 간판이 필요했고, 결국 그걸로 한 자리씩을 얻어 떠나갔다. 그 출발점이 소통의 차단과 소문의 유통이었고.

<덧붙이는글>
블로고스피어가 소문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최근 들어 부쩍 그 속도를 더하는 성부르고.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이 투명하지 않은 탓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블로고스피어의 근간은 블로그다. 블로그의 힘은 그 투명성에 있다. 블로그는 라이프니쯔가 말한 '모나드(단자)'와 같다. 블로그 각각은 서로 독립하여 존재하지만, 그 투명성으로 인해 상호 소통한다.

블로그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가 유통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블로고스피어의 일이 아니다. 투명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문'의 형태로 작동하며, 편가르기 양상을 띠고 나타난다.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늘 듣보잡는 바로 그 일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굳이 블로그라는 타이틀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블로그의 가장 큰 특성 가운데 하나-어쩌면 본질이라 할 수 있는-를 저버린 곳에서 굳이 블로그 운운할 이유는 없는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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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너바나나 2009/02/23 12:38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블로그에서 주장하는 것과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달라도 너무 다르니 신물이 날 지경이구만요. 글 한 두개만 보고 그런갑다하며 좋은 인상만 갖으면 좋겠지만, 그리 말한 블로그가 또다른 행동을 하는 것까지 보게 되니 모든 말들이 헛소리로만 들리구만요. 글을 많이 보지 말아야겠구만요.

    • 하민혁 2009/02/23 16:43  편집/삭제  댓글 주소

      하던 일을 접고 인터넷에 뛰어든 이유 가운데 하나가 다중이 참여하는 공간이라면 그래도 뭔가 의미있는 결과를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판단이 옳았구나 여길 때도 있었구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또다른 문제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많이 시니컬해져 버렸지요. "Be evil, or Not be evil."이라는 자기 소개가 비롯되는 것도 그 지점이었구요. 한때는 좀 거창했댔거든요. "욕망하는 자가 발언하고 발언하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 등등. ^^

      하지만, 웹을 떠나더라도 이렇게는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그건 도피 이상일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입니다. 올 한 해 함 가보겠다 말하는 배경이요. 하고싶은 말 실컷 함 해보고 나서 그래도 답이 아니 나온다 싶으면 그때 가서 어떤 판단을 해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지요.

      최근 들어 블로고스피어가 살짝 시끄러운데, 저는 이게 매우 고무적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맞부딪치는 과정 자체가 옥석을 가리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는 때문입니다. 굳이 '양질의 전환법칙'을 말하지 않더라도, 앞서 말씀드린 '시간'의 개념과 함께 이제 양적인 점에서도 얼추 그 단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이구요.

      깨어 있도록 늘 추임새 넣어주심에 고맙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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