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단상

2009/12/04 06:23 / 분류없음
얼마 전, 소설가 이외수가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글을 읽었다. 그 가운데는 '가난해서 천재 아들을 홍익대학교 미대에 보내지 못했다'는 이외수의 아버지가 쓴 글도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문득, 부모를 교사로 둔 아이가 끼니를 이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면, 그래서 미대를 가지 못할 정도였다면 일반 서민의 아이들은 무슨 힘으로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박노자의 <만감일기>를 보면서 드는 생각도 비슷하다. 오슬로 대학의 교수를 하고 있는 이 이가 보는 대한민국은 '극단적인 계급주의가 관철되는 사회'다. 예컨대 여기서는 "비 강남 거주자, 비 특목고 학생, 비 SKY 학생, 비 영어 능통자는 '주류'의 영원한 '타자'로 남기 마련이다."

박노자에 따르면,

"'주류 사회 귀족(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은 강남 등 '특권' 지역에 거주하는 영어 능통자, SKY 또는 미국 '명문대' 학력 소유자)와의 원근관계에 따라 각 인간마다 정확하게 그 '몸값'이 매겨지고 철저하게 위계적인 질서에 의해 그 '자리'가 굳어지는 사회, 아예 체념에 빠지거나 '오로지 출세'에 매달리는 게 지배적인 인간 타입이 돼 있는 사회"

가 대한민국이다. 박노자는 그래서 자신의 아이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는 좀 어려울 것같다'고 말한다. 그게 자신이 귀국을 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소설가 이외수에 관한 글을 읽었을 때처럼,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이물감을 느끼는 대목이다.

뭔지 모를 이 이물감은 트위터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트위터는 테크노폴리의 세계이자 일종의 보보스족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트위터에는 수많은 정보가 유통되고 시대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이 번득인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상식과 교양이 넘쳐난다.

트위터를 하다 보면 박노자와 같은 인식틀을 가진 이들을 적지않게 보게 된다. 바로 상식과 교양을 말하는 이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등에 유학을 다녀왔거나 유학 중인 이들이다. 아니면 아이들을 미국 등지로 유학 보내고 있는 이들이다.

근데 이들이 주무기로 휘두르고 있는 그 상식과 교양은 필요에 따라 골라 쓰는 양날의 검이다. 한쪽은 대한민국을 베는 데 쓰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유학한, 혹은 유학하고 있는 곳을 베는 데 쓰이는.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미국? 그까이꺼 아무것도 아니야. 주눅들 필요 하나 없어. 미국 애들이 말하는 것들은 전부 헛소리고 제국주의적 거드름일 뿐이야. 어떻께 아냐고? 나를 봐. 내가 지금 애들하고 같이 있잖아. 나, 잘 나가는 사람이야. 암튼 그러니 대한국민 여러분, 미쿡 애들한테 피해망상 가질 필요 없어요. 절대로."

"대한국민은 왜 이렇게 옹졸하고 편협한지 모르겠어. 우물안 개구리야. 미국 등지를 봐라. 생각의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왜 그렇게 후진 생각들을 하고 사는 거야. 쪽 팔리서 원.. 그러니 후진 대한국민 여러분, 제발 선진국 보고 좀 배우세요. 잘 나신 나처럼."

결국 이들이 굳이 외국까지 나가서 트위터를 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이 양날의 검을 갖기 위해서다. 그게 아니라면 제국주의의 그 허튼 소리를 듣기 위해 '제국주의의 품에 안긴 것'이겠기 때문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직접 그 헛소리를 확인하고 그걸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전하고 계도하기 위한 책임의식의 발로일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무튼, 어떤 경우에도 이들에게 대한국민은 자신들이 계몽해야 할 어리석은 대중에 지나지 않는다. 박노자의 인식틀을 빌어 말하자면, 이들의 눈에는 강남에 살지 않고 특목고에 다니지 않으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나오지 않은 이들은 자신들이 구제해줘야 할 불행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가?
대한민국은 어쩌면 저 이들이 걱정하는 딱 그만큼 불행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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